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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知논술/수학 오디세이]수학이 꽃보다 아름다워

입력 | 2007-04-03 03:01:00


봄이 오면 꽃들이 온 들에 화사한 그림을 그린다. 목련 개나리 진달래 해당화 매화 등 봄꽃은 화가들의 단골 소재다.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탄생’과 ‘봄’이라는 작품에 미의 여신 비너스와 봄의 여신 플로라를 함께 그렸다. 이 작품들에 등장하는 봄의 여신은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된 드레스를 입고 있다. 특히 ‘봄’이라는 작품에 그려진 플로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꽃 장식을 달았다. 보티첼리는 이 그림 속에 식물 500여 종과 꽃 190여 종을 그려 넣었다. 이 중 어떤 꽃은 식물도감에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

○ 이성과 과학의 문화 운동 ‘르네상스’

보티첼리와 같은 르네상스 화가들은 좀 더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유클리드 기하를 연구했다. 그 결과로 등장한 것이 원근법(遠近法)이다. 원근법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3차원 공간의 사물을 멀고 가까움이 드러나도록 2차원의 평면 위에 묘사하는 회화기법이다.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의 탄생은 인간의 지성이 한 단계 발전했음을 알려 준다.

중세까지만 해도 서양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기독교 정신의 왜곡으로 고대의 찬란했던 문화와 문명은 점점 사라져 갔고 모든 것이 오직 기독교라는 종교를 위해 존재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중세의 그림도 오직 기독교와 예수의 영광이 부각되도록 그려졌다.

이런 중세의 사고방식을 바꿔 모든 사물과 현상을 이성적이며 과학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 바로 르네상스다. 르네상스는 대개 14세기부터 시작됐다고 하지만 수학과 과학에 뛰어났던 로저 베이컨은 이보다 앞선 13세기에 이미 다음과 같은 말로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렸다.

“하나님은 이 세계를 유클리드 기하의 원리에 따라 창조했으므로 인간은 그 방식대로 세계를 그려야 한다.”

○ 피보나치, 수학문제 풀이집 제목을 ‘꽃’으로 출간

베이컨보다 앞선 중세시대 과학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피보나치다. 대개 ‘피보나치’하면 앞의 두 항을 더해 다음 항이 되는 피보나치수열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중세의 뛰어난 수학자로 몇 개의 저작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산반서’다. 피보나치수열은 바로 이 책에 나오는 문제 중 하나다. 그러나 그의 다른 저작 중에는 ‘꽃’이라는 이름의 책도 있다.

지금은 인구 2만 정도의 작은 도시이지만 당시에는 무역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피사에 살았던 피보나치의 명성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2세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래서 황제는 그를 만나기 위해 피사를 방문했다. 피보나치를 만난 황제는 그에게 세 가지 어려운 수학문제를 던졌다. 당시 아무도 풀지 못했던 문제들이었다. 세 문제를 모두 풀어낸 피보나치는 이 가운데 두 문제의 풀이를 ‘꽃’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발표했다.

‘꽃’에 실린 두 문제 중 하나는 3차방정식에 관한 문제로 x3+2x2+10x=20의 근을 구하는 것이다. 지금은 2차와 3차는 물론 4차방정식까지 근의 공식이 있어서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대수방정식에 관한 근의 공식이 없었기 때문에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나머지 한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3명이 저축한 돈을 적당히 나눠 가졌다. 그런 다음 첫 번째 사람은 자신이 가진 돈의 /12 을 내고, 두 번째 사람은 /13 을 내고, 세 번째 사람은 /16 을 내서 돈을 다시 모았다. 이 모은 돈을 다시 똑같이 3등분해서 나눠 가졌다. 그랬더니 첫 번째 사람이 가진 돈은 처음 저축액의 반이 되었고, 두 번째 사람은 처음 저축액의 /13 이 되었으며, 세 번째 사람은 처음 저축액의 /16 이 되었다. 그렇다면 처음 저축액은 얼마였으며, 이들은 처음에 각각 얼마씩 가졌을까?’

당시의 문제와 풀이는 미지수 기호 x나 덧셈, 뺄셈 등과 같은 대수기호를 사용하지 않은 산문의 형태였다. 이 문제의 내용과 풀이과정이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졌으면 피보나치는 책 제목을 ‘꽃’이라고 붙였을까? 이 문제를 풀며 800년 전 레오나르도 피보나치가 느꼈을 수학적 아름다움에 공감해 보는 것도 화창한 봄을 만끽하는 한 방법이리라.

한서대 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