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스 김승현은 신인이던 2002년 프로농구 정상에 오르며 최고 시즌을 보냈다.
영광 뒤에는 아픔도 있었다. 그는 당시 LG와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오른 발목을 심하게 다쳤다. 제대로 뛸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2차전부터 SK와의 챔피언결정전 7차전까지 줄곧 코트를 지킨 끝에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김승현이 심한 부상에도 치열한 승부를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대포 주사’의 결과였다. 이 주사는 단시간에 빠른 효과를 보는 진통제로 코트에서 한때 신비의 명약으로 통했다.
정규리그 1위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무릎 부상이 심하던 1988년 농구대잔치에서 이 주사를 맞고 기아를 우승으로 이끈 뒤 최우수선수상까지 받고 은퇴했다. 정규리그 2위 신선우 감독 역시 고별무대였던 1984년 농구대잔치에서 주사 투혼을 보이며 헹가래를 받았다.
‘대포 주사’는 약효는 뛰어나도 부상 주변 조직을 악화시키고 건강한 연골이나 뼈까지 파괴할 수 있는 심각한 부작용이 따른다.
‘대포’라는 이름도 스테로이드 계열의 근육 주사제인 ‘데포메드롤’에서 유래됐다. 한 대 맞으면 마치 대포 쏘듯 효과가 크다는 데서 ‘데포’가 아닌 ‘대포’로 바뀐 것.
김승현은 데뷔 시즌에 꼭 우승컵을 안고 싶다는 투지에 주사까지 맞았지만 후유증이 컸다. “약효가 떨어지면 뼈를 깎는 아픔이 찾아왔어요.”
그런 그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올 포스트 시즌에 부상 악령에 신음하고 있다. 삼성과의 6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자신보다 40kg이나 더 나가는 오예데지에게 깔리며 왼쪽 발목을 접질렸다. 부상 장면을 지켜봤던 모비스의 유 감독은 “남은 경기 출전이 어려워 보인다. 삼성과 4강전을 치를 것 같다”고 예상했다.
2차전에서 빠진 김승현은 4일 3차전 출전도 불투명하다. 이날 지면 시즌을 마감해야 하는 중요한 일전이지만 자칫 선수 생명을 단축시키는 무리수를 두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역 시절 역시 잦은 부상에 시달렸던 오리온스 김진 감독의 마지막 승부수가 더욱 궁금해진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