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제1금융권과 제2금융권의 지점장급 이상 여성 금융인 50여 명이 국회에 모여 워크숍을 했다. 이 행사에 강사로 초청된 ‘국내 최초 여성 외환 딜러’인 김상경(사진)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은 모임 참석자들에게 “이 모임을 일회성으로 끝낼 게 아니라 정기 모임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남성들에 비해 인적 네트워크가 취약하다고 생각한 모임 참석자들은 김 원장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다음에 모일 날짜까지 결정했다.
은행의 지점장급과 증권사, 보험사의 부장급 이상 중견 간부 200여 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여성 금융인의 최대 조직인 ‘전국여성금융인네트워크’는 이렇게 결성됐다.
김 원장은 “능력 있는 여성 금융인이 많지만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대부분 지점장이나 부장 정도에서 직장 생활을 끝내는 사람이 많다”며 “여성 금융인들이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성들에 비해 취약한 인적 네트워크 강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모임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 모임에서 4년째 회장을 맡고 있는 김 원장은 ‘금융계의 대모’로 불릴 정도로 인맥이 넓다. 2004년 한 여성지에서는 김 원장의 넓은 인맥을 빗대 ‘사람의 거미줄을 엮는 여자’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여성들은 일만 잘해서 승부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그러다 보면 일에 파묻혀 바깥세상을 보지 못하고, 시야도 좁아진다”며 “결국 성공하는 여성들을 보면 일만 잘하는 사람보다는 대인 관계가 폭 넓은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남자든 여자든 인맥을 쌓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모임에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처음에는 아무도 불러 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며 “친목 모임이 시간만 낭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삶이 풍요로워지고, 여러모로 많은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외환은행 딜러 시절 우연히 참석하게 된 모임이 이후 많은 도움이 됐다고 소개했다. 모임 이름은 없지만 신상훈 신한은행장과 법무법인 태평양 이종욱 대표변호사 등 10여 명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년에 두세 번씩 꾸준히 모인다고 한다.
김 원장은 같은 분야 사람들보다는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릴 것을 권한다.
편하게 만나서 어울리는 ‘푼수회’ 멤버들은 연령도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고, 직업도 디자이너, 치과의사 등 여러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김 원장이 매주 일요일 북한산 등산을 함께하는 이들은 시인 신경림 씨, 소설가 현기영 씨 등 문인이다. 그는 20년째 이들과 북한산을 오르고 있다.
최근 한 달에 두 번씩 모여서 골프와 식사를 하는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동기생들도 ‘출신 성분’이 다양하다고 한다.
많은 모임을 ‘관리’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김 원장은 “1년에 한 번 정도 연락할 모임과 자주 보기는 어렵지만 인연을 계속 이어가야 할 모임, 좀 더 가깝게 지낼 모임으로 분류해서 그에 맞게 시간을 배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임을 분류하더라도 가정과 직장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 직장인들이 모임에 적극적으로 나가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김 원장은 두 딸을 키운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그는 “나도 육아와 관련해서는 친정과 시댁의 도움을 받았고 우리 애들 책상 앞에 ‘스스로 자란다’는 표어를 붙여 놓기도 했다”며 “육아 문제로 단절되기 시작하면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더 어렵기 때문에 좀 이기적일지 몰라도 어느 정도는 가족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사진=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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