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신문윤리위원장으로 선임된 강신욱 전 대법관. 강 위원장이 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신문의 상업성 때문에 초래되는 윤리 문제, 현 정부의 언론정책 등에 대한 생각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안철민 기자
“신문의 상업성에서 오는 윤리적인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윤리의 기준도 달라지겠지만 인간이 사는 공동사회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토대는 바뀌지 않습니다.”
최근 언론 자율 감시 기구인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신임 위원장으로 선출된 강신욱(63) 전 대법관이 밝힌 일성이다. 팩트(사실)를 잘못 전달한 것은 정정할 수 있지만 신문들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윤리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내보내면 사회 전체의 도덕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
그렇지만 강 위원장은 ‘신문 예찬론자’다. 그는 “신문을 읽지 않으면 사회의 주요 현안을 깊이 있게 알기 어렵기 때문에 사회 지도층 인사와 공직자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신문 읽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신문주간(2∼7일)을 맞아 강 위원장을 3일 만났다.
―신문윤리위원장을 맡으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추천을 했는데 내가 신문 전문가가 아니어서 몇 번 사양하다가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수락했습니다.”
강신욱 위원장△1944년 경북 봉화 출생 △1967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68년 사법시험 9회 합격 △1973년 서울지검 영등포지청 검사 △1983∼1987년 대검찰청 형사2과장, 중앙수사부 2, 4과장 △1988∼1991년 서울지검 특수2, 3부장, 강력부장, 형사1부장 △1993년 서울지검 2차장 △1995년 청주지검장 △1997년 법무부 법무실장 △1999년 서울고검장 △2000∼2006년 대법관 △2006년 10월 변호사 개업 △2006년 7월∼동아일보 ‘동아광장’ 고정필자
―현재 신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보도의 정확성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업성에서 오는 윤리적인 문제입니다. 팩트가 틀린 것은 대부분 고의성이 없기 때문에 사과를 하거나 정정보도를 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문의 상업성은 선정적이고 거친 기사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기사는 사회도덕을 흐리게 하고 우리 사회에 심각하게 퍼져 있는 도덕적 해이 현상의 한 원인이 됩니다. 앞으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겠습니다.”
―현 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기관과 공인이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가혹한 비판을 받는 일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던 시절에도 있었습니다. 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언론의 본질적 자유에 속합니다. 정부가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고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진의가 전달되지 않았다면 정부가 다른 방법으로 홍보하면 됩니다. 다만 언론도 팩트를 왜곡하거나 고의적으로 일부 사실만 뽑아내 부각시켜서는 안 됩니다.”
―검사로 27년 동안 재직했는데 언론 때문에 곤란을 겪은 적이 있는지요.
“20년쯤 지난 일이지만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기자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슬그머니 한두 명씩 사라지더니 기사를 송고하고 있더라고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에 섭섭하기도 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이해가 갑니다. 검사한테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비리를 제보한다 해도 검사가 수사를 안 하겠습니까. 물론 보도 유예(엠바고) 사안을 자사의 이익만을 위해 먼저 보도한 경우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신문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읽습니까.
“지금은 동아일보 등 3개 신문을 하루에 1시간 정도 정독하고 있습니다. 아침에는 제목 중심으로 쭉 넘겨 본 뒤 꼭 읽고 싶은 기사는 접어 두었다가 퇴근 뒤에 꼼꼼하게 읽어 봅니다. 신문윤리위원장을 맡은 만큼 앞으로는 좀 더 많은 시간을 신문 읽는 데 할애하려고 합니다.”
―요즘은 방송과 인터넷이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하는데 신문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정확한 사실을 모른 채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한미 FTA 체결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파장이 있는 사안인데 내용이 방대하고 복잡해서 신문을 읽지 않으면 정확하게 실체를 알기 어렵습니다. 방송이나 인터넷만으로는 정보와 지식을 자기 것으로 충분히 소화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오랜 공직생활을 마치고 재야로 나왔는데, 법조계의 시급한 현안은 무엇입니까.
“재판에 대한 불신이 심각합니다. 검찰과 법원에 몸담고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 진실에 근접했다고 자부했는데 나와서 보니 당사자들이 불만을 가질 만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수사와 재판이 당사자들이 갖는 불만을 해소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절차적으로는 공판 중심주의가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당사자들이 할 말을 다 하게 해 주자는 겁니다. 판결문을 가능하면 쉽고 자세하게 써 주는 것도 불만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신문과 기자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사의 영향력은 기자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질이 떨어지는 기사는 독자들이 금방 알아챕니다. 기사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도록 정확하게 쓰고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도덕성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