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국이 심적으로 가장 어려웠다.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에다 해외 대국도 처음이라 힘들었다. 괜찮은 형세였는데 중반 이후 집중력이 떨어져 졌다.” 바둑이 끝난 뒤 솔직하게 털어놓은 윤준상 4단의 고백이다. 역시 꼭 이겨야 한다는 부담이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창호 9단을 상대로 3-0 승리가 눈앞에 보이자 천연덕스럽게 유지해 오던 평정심이 갑자기 흐트러졌다. 이제 고작 열아홉 살. 흔들리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애초 흑 ○를 둘 때는 151의 수로 152 곳에 끊어 백 ○ 두 점을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싶은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모락모락 의심이 일기 시작했다. 바로 참고도의 수순. 흑 1∼5로 백 석 점을 잡을 때 백 6, 8의 수단이 눈에 확 들어온 것. 이하 백 12까지 흑 ○ 다섯 점이 떨어지면 말로 주고 되로 받는 격이다.
이 걱정으로 흑 151로 물러섰으나 기우였다. 흑 159가 언제나 선수였던 것이다. 즉 참고도 흑 A와 백 B를 교환해 놓고 흑 1 이하를 결행했으면 미세한 승부였다. 여기가 마지막 기회였다.
해설=김승준 9단·글=정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