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쏟아질 거라는 일기예보에도 아랑곳없이 전남 구례로 향했다. 전주를 지날 무렵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섬진강을 따라 터질듯 숨 막히게 부풀어 오른 벚꽃 봉오리들이 가지 끝에 매달려 팔을 흔든다. 민박집 주인 내외는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맞아준다.
“아따! 능력 있음 혼자 사는 것이제. 뭘러 시집가서 고생혀? 혼자 여행도 다니고 인생 멋들어지게 사는 거 아니겄소? 참말로 부럽고만.”
주인 내외는 순박하게 웃으신다.
문득 10여 년쯤 전에 홀로 다녀온 거문도가 생각났다. 여수 여객터미널에 앉아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말을 붙였다. 혼자 머물 생각이면 자기네 집에서 민박을 하라고 했다.
그 후 할머니는 졸졸 내 그림자를 밟고 다니셨다. 몸이 좀 안 좋아 방에서 누워 있었더니 창문 틈으로 엿보기도 하고,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밖에서 헛기침을 하시는 통에 볼일 보기도 힘들었다.
할머니를 따돌려 해안을 따라 한적한 길을 산책할 수 있게 되었을 땐 내심 안도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어느 순간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참아야 하는 벱이여! 사내들 애덜 같아서 어려선 부모 속 여이고 커선 마누라 속 여이고… 힘들어도 참고 굳세게 살아야 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가 혼자 여행을 다니면 다들 그런 시선으로 봤다. 남편 때문에 가출했거나 실연의 상처를 달래는 여자일 것이라는 인식 말이다. 아직도 여자가 혼자 여행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세상이 달라지고 싱글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그만큼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가끔은 내가 싱글이기 때문에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그 때문에 얻은 즐거움과 행복을 생각하려 노력한다.
혼자만의 행복 운운하는 것이 너무 이기적이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돈 많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행복이 서로 다르고,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다르게 오는 것일 뿐 비교할 것이 못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봄이다. 꽃은 피고 산은 초록빛 옷으로 갈아입고 낯간지러운 바람도 살랑거린다. 어디론가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답답하고 숨 막히는 일상에서 고통스러웠던 나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을 줘야 할 때이다. 회색빛 도시에서 각박한 인심에 우울했던 싱글들… 이제 한 번쯤 쉬어 가자. 수고한 나에게 선물을 주자.
황명화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