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영 뮤지션 매너스쿨’에서 주영신 아시아나항공 서비스컨설팅 선임강사가 피아니스트 김선욱(오른쪽)을 비롯해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 강유경에게 무대 인사법을 교육시키고 있다. 화려한 무대 매너로 정평이 나 있는 소프라노 조수미는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는 것은 데이트 장소에 나가는 것과 같다. 두 시간 반 동안 사람들이 날 사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오른쪽 사진). 석동율 기자
《“연주자는 나올 때부터 당당하게 나와야 해요.
나오는 모습만 봐도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 카리스마를 보여 주세요.
무대에 서 있는 사람은 반드시 객석을 정면으로 보고 관객과 일일이 눈맞춤을 해야 합니다.
눈을 내리깔면 자신감이 없어 보입니다.”
지난주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트홀.
주영신(37) 아시아나항공 서비스컨설팅 선임강사가 피아니스트 김선욱(19)의 머리와 어깨에 손을 대고 인사법을 교정해 주었다.
이날 특별 매너교육을 받은 젊은 음악인들은 김선욱 외에도 금호문화재단에서 고(古)악기를 대여받은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19·독일 뮌헨 음대), 강유경(12·경기 의정부시 호암초등학교)이다.
젊은 음악인들이 국제무대에 나가려면 연주 실력뿐 아니라 당당한 무대 매너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내려갈 때는 조금 빠르게 내려가고, 잠시 멈춘 뒤, 천천히 올라오세요.
45도까지만 내려가세요. 90도로 숙이는 것은 대통령을 만났을 때나 그렇게 하시고, 관객들 앞에서는 절제된 인사가 더 품위가 있어 보입니다.”》
○ 클래식은 매너의 예술
음악회장에 가보면 국내 음악인들은 너무 겸손한 나머지 쭈뼛쭈뼛해하거나 쑥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또한 평소에 입지 않던 너무 화려한 드레스와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나와 보기에도 불안한 자세로 나왔다 들어가는 모습도 관객들의 눈에 어색해 보인다. 연주를 마친 교향악단 단원들의 경우 지휘자는 화려하게 인사를 하는데, 뒤에 서서 심드렁하게 서 있기 일쑤다. 마치 모두들 “빨리 끝나고 집에나 갔으면…” 하는 표정이다.
클래식은 매너의 예술이다. 연주실력뿐 아니라 얼굴 표정, 걸음걸이, 몸가짐 하나하나가 그날의 감동을 크게 좌우하게 마련이다. 최근 경남통영국제음악제에 참가했던 피아니스트 임동민은 윤이상의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작품’ 연주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악보를 들고 퇴장해 버려 관객들에게서 의아스러움을 자아냈다.
한국의 연주자들은 보통 연주장에서 인사를 할 때 당당하기보다는 수줍은 듯 쭈뼛거리는 모습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 연주 실력이 좋든 나쁘든 자신감을 갖고 그날의 주인공처럼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이 매너다.
지난해 내한했던 러시아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36)은 커튼콜에서 좌측, 중간, 우측에 3번씩 인사하고, 뒤를 돌아 또 3번 인사하는 무대 매너를 보였다. 자신감에 넘치는 미소를 머금은 그가 무려 1시간이 넘도록 커튼콜에 응답하고, 10여 차례에 걸쳐 앙코르 곡을 연주하면서 객석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소프라노 조수미와 신영옥의 우아한 몸동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은 지휘자와 눈을 맞추며 화려하게 미소 짓는 무대 매너로 정평이 나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은 “스스로 연주가 맘에 안 들어 얼굴을 찡그렸더니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배가 아팠느냐’ ‘화가 났느냐’고 걱정해 주었다”며 “연주자는 마지막까지 공연을 책임지는 존재인 만큼 언제나 평상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 좀더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의 지휘자 유리 테르미카노프의 무대 매너에 정말 감동했어요. 오케스트라를 전부 일으켜 세우고 자신은 퇴장해 모든 공을 오케스트라에 돌리는 장면에서요.”
영국 리즈 콩쿠르 우승 이후 활발한 국제무대 활동을 펴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가장 좋은 매너는 연주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다”며 “국제무대일수록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나가야 인정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 강사는 “매너는 한순간에 나오는 것이 아니며 꾸준히 자기 모습을 모니터링하고 바꿔 나가야 자신도 모르게 배어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1996년부터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을 비롯해 기업체 위탁 매너교육을 실시해 왔다. 올해 3회째를 맞는 ‘젊은 음악인들을 위한 매너스쿨’은 14일 열릴 예정이다. 화장법, 무대 인사법, 리셉션 시 테이블 매너와 같은 국제적인 음악가로 성장해 나가기 위한 자기 관리법 등을 배운다.
주 강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타인을 배려하는 매너 문화에 익숙해 있지 않다”며 “매너는 음악인뿐 아니라 직장인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며 매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무대에서 인사하는 법
1.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어 나온다.
2. 객석 전체를 보면서 천천히 관객들과 눈을 맞춘다.
3. 치아를 보이며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4. 45도 각도가 될 때까지 목과 상체를 함께 숙인다(약간 빠른 속도로).
5. 숙인 상태에서 1초간 멈춘다.
6. 내려갈 때 속도보다 천천히 올라온다.
■객석에도 매너가 있어요
클래식 공연장에서의 매너는 무대 연주자와 객석의 호흡에서 완성된다. 관객들의 잘못된 매너는 주위 관객뿐 아니라 그날 공연 전체의 분위기까지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주요 공연장 하우스 매니저들에게서 올바른 객석 매너를 들어봤다.
#10분 전 입장하기
관객 매너의 출발점은 제시간 입장이다. 30분 전 공연장에 도착해, 10분 전에는 자기 좌석을 찾아서 들어가서 자리 잡고, 프로그램을 한 번 읽어보고, 휴대전화를 끄고, 가방도 내려놓고 공연을 감상할 준비를 해야 한다. 서울 예술의 전당의 경우 공연 시작 후 입장하려는 지각 관객은 평균 10∼15%에 이른다. 2000명 중 200∼300명꼴.
교향악단 공연의 경우 ‘서곡 끝나고 입장해도 된다’는 식으로 상습적으로 늦는 사람들도 있다. 공연 시작 후 뒤늦게 우르르 밀려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일찍 온 사람들이 되레 피해를 본다. 공연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문자까지 보낸다?
올해 초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의 내한공연, 드레스덴 필하모니의 ‘마태수난곡’(바흐) 연주에서도 여지없이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더 심각한 경우는 자기 가방에서 휴대전화 벨이 울려도 자기 것인 줄도 몰라 20∼30초간 계속 울리게 내버려 둔다는 것. 심지어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사람, 어두운 극장 내에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느라 불빛을 비추는 사람까지 있다. 휴대전화가 울리는 타이밍은 언제나 절묘하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연주자가 절정의 기교를 다하는 ‘카덴자’ 순간, 연극 ‘이’에서 죽은 공길을 붙잡고 우는 연산의 뒤로 자객이 칼을 들고 들어오는 순간 누군가의 휴대전화에서 ‘군밤타령’이 울린다. 연주자 중에는 갑자기 휴대전화 멜로디를 따라 즉흥 연주를 하거나, 관객을 향해 ‘전화 받으라’며 빤히 쳐다보며 무안을 주기도 한다.
#안다 박수? 안다 기침!
공연장에서 요즘 가장 지탄을 받는 관객은 ‘안다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이 곡이 언제 끝날 줄 ‘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연주가 끝나기가 무섭게 큰 소리로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다. 지난달 ‘마태수난곡’ 공연에서는 2부의 마지막 ‘우리들은 눈물에 젖어 무릎 꿇고 당신을 부르나이다’를 연주하고 지휘자의 마지막 손길이 내려오기도 전에 2층 합창석에서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는 바람에 ‘수난곡’의 여운은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빠른 템포로 끝날 때는 괜찮지만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 느린 악장에서 연주자의 손이 내려지기도 전에 터져 나오는 박수는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안다 박수’만큼 요즘엔 ‘안다 기침’도 유행이다. 악장 중간에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이 매너가 아닌 줄 아는 사람들도 악장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침을 해대는 경우가 있다. 마치 ‘나도 동참하고 싶다’는 듯 한 사람이 시작한 헛기침은 수십 명에게 전염이 되고, 웃음소리까지 더해져 음악홀은 아수라장이 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