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타기는 인간과 말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 밑바탕엔 믿음과 사랑이 있다. 말이 사람에게 다가와 머리를 부비거나 살짝 물 때는 사랑한다는 뜻이다. 말 타는 사람은 틈만 나면 말을 칭찬해 줘야 한다. 칭찬과 사랑은 말에게 홍당무나 설탕을 주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서울시 뚝섬 승마훈련원에서 말타기를 즐기고 있는 서울시 승마동호회원들. 이훈구 기자
《태양처럼
몸을 끌어올리는 앞발과
하늘을 쓸어 내는 꼬리로
너는 달리는 것이 아니야
날개를 달았지……
너는 늘 깃발을 꽂았지
땅의 여신들을 흔들어 깨우고
기수를 헹가래 치는
다갈색 질주……
아픈 과거를 지우고 죽을 때까지
달리는 너는 인간의 꿈이다
(황도제, ‘명마는 인간의 꿈’에서)》
몽골인들에게 말 등은 놀이터다. 달리는 말 등 위에 드러눕는가 하면 반대편 배 쪽에 감쪽같이 몸을 숨긴다. 고삐를 놓은 채 화살을 쏘는 건 기본. 한쪽 발을 말 등 위에 걸어 놓고 몸을 숙여 땅 위의 물건을 가볍게 집는다.
유럽인들은 말을 우아하게 탄다. 허리를 용수철처럼 부드럽게 앞뒤로 반동을 받으며 탄다. 말 탄 사람의 머리 허리 엉덩이가 말 등과 90도를 이룬다. 무게중심이 늘 말안장에 고정돼 있다.
미국인들은 황야의 무법자처럼 건들건들 탄다. 무게중심이 좌우, 앞뒤로 수시로 바뀐다. 자갈밭이나 산비탈 등에서도 부드럽게 잘 탄다. 엉덩이가 안장에서 살짝 들어 올려지고 허리도 약간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몽골인의 말 타기는 자유분방하고 활달하다. 그것은 몽골 말의 키(어깨높이 150cm 이하)가 작아 전후좌우 방향 전환에 능하고 날쌔기에 가능하다. 유럽이나 미국 말은 키가 160cm가 넘는다. 똑바로는 잘 달리지만 방향 전환엔 굼뜨다. 더구나 사람의 체중이 그대로 말에 실린다. 대개 유럽인의 말 타기는 귀족적이고 미국인들은 실용적이다.
승마는 고도의 평형감각을 요구하는 스포츠다. 체조의 평균대와 마루운동은 정지된 곳에서 균형을 꾀하지만 승마는 움직이는 말 위에서 평형을 꿈꾼다. 말과 사람이 하나가 돼야 하는 이유다. 말이 뻣뻣하면 탄 사람도 가시방석이다. 말 탄 사람의 허리가 구부정하면 말도 허리가 굽는다.
말과 말 타는 사람은 ‘은밀한 언어’로 대화한다. 접촉과 감각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말은 유치원 아이처럼 부드럽게 다뤄야 한다. 말은 원래 겁쟁이인 초식동물. 사람이 한번 말의 믿음을 잃으면 그것을 회복하기는 극히 어렵다.
국내에서 하는 승마는 대부분 유럽형 말 타기다. 말도 호주산이나 유럽산이 대부분. 승마는 전신 수직운동이라 생각보다 힘들다. 말이 움직일 때마다 말 탄 사람의 몸은 위아래로 리드미컬하게 요동친다. 내장이 출렁거리고 머리가 들썩거린다. 양쪽 종아리는 말의 양쪽 배를 늘 조여야 한다. 그만큼 무릎 관절이 튼튼해지고 부드러워진다. 말 탄 사람은 허리를 곧게 세워야 한다. 타는 사람이 허리가 굽으면 말도 허리가 비뚤어진다.
1970년대 여자육상 800m 국가대표선수였던 이순옥(51) 씨는 “나이 먹다 보니 단거리 달리기가 힘들어져 승마를 하게 됐다. 5년쯤 됐는데 허리와 무릎 등 하체가 몰라보게 튼튼해졌다”고 말한다.
1년 6개월 경력의 주부 김신예(52) 씨는 “뱃살과 팔뚝 살이 9kg이나 빠져 너무 행복하다. 한때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폐활량까지 좋아졌다”며 뿌듯해했다. 역시 1년 6개월 경력의 여성 직장인 백모(33) 씨는 “싫증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격이 침착해지고 대담해졌다. 게다가 다리에 근육이 붙었고 허리가 대나무처럼 꼿꼿해졌다”고 말했다. 1년 3개월 경력의 김경화(38) 씨는 “동물과 교감하는 스포츠라 너무 재밌다. 한번 빠져 들면 중독성이 강해 그만두기 힘들 것”이라며 웃었다.
6년 경력의 김용구(37·서울생활체육승마협의회 이사) 씨는 “엉덩이가 처지지 않고 팽팽해진 것을 느낀다. 허벅지 안쪽의 잘 안 쓰는 근육이 강해져 다리에 부쩍 힘이 붙었다”고 소개했다.
세상의 말 중에서 타지 못할 말은 없다. 하지만 말은 누구나 처음부터 대뜸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자세부터 배워야 한다. 서울시 뚝섬 승마훈련원의 정현아(34) 교관은 “100번 정도는 타야 제대로 승마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준성(28) 교관도 “한번 기본자세를 잘못 익히면 고치기가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말에게도 많은 부담을 준다”고 설명했다.
전국의 등록 승마장은 28곳. 사설 승마장도 180여 개나 된다. 등록 승마장은 한 달(1주 6회) 회원비 40만 원에 레슨비 20만∼30만 원 선. 사설은 그 반값 정도다.
4개월 코스(32회)의 건국대 승마아카데미(010-3181-4446)는 70만 원. 서울 뚝섬 승마훈련원(02-463-8565)은 말 80마리에 교관만 11명. 초보자의 경우 레슨비를 포함해 1회에 5만4000원이다. KRA의 무료강습(30명)도 있다. 홈페이지(www.kra.co.kr)에 회원으로 가입한 뒤 무료 승마 강습 신청란에 신청하면 된다. 무작위 전산 추첨. 경쟁률이 아주 높아 바늘구멍이다.
■말은 15분씩 하루에 7번 누워서 잔다
요즘 TV에선 고구려 관련 사극이 인기다. 전쟁 장면도 많다. 하지만 거기에 나오는 말들은 고구려인이 탔던 말이 아니다. 대부분 키가 큰 외국산 말. 고구려 말은 키가 작은 몽골마 종류였다.
승마용 말은 1필에 500만∼2000만 원. 규정에 선수용 말은 6세, 올림픽 출전 말은 7세가 넘어야 된다. 경마용 말은 3∼5세밖에 못 뛴다. 은퇴한 후에도 승마용으로는 쓸 수 없다. 달리려는 본능 때문.
▽천리마는 있는가?=중국 한나라 무제는 현재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에 걸쳐 있는 페르가나 분지의 대원국을 정벌하고 전리품으로 ‘피를 땀처럼 흘리며 달린다’는 한혈마(汗血馬) 3000여 필을 얻었다. 바로 천리마라 불리던 말이다. 지금의 아라비아산 말의 먼 조상이라 할 수 있다. 지구력이 뛰어나 2, 3일에 걸쳐 400∼500km를 너끈히 달릴 수 있다. 피는 말의 뒷목과 어깨 사이의 피하조직에 기생충이 서식해 나는 것. 오래 달리면 그 부분에서 땀과 피가 흘러내린다. 몽골마는 한번에 40∼50km밖에 못가 역참에서 수시로 바꿔 탔다.
▽적토마(赤兎馬)란?=‘붉은 빛을 띤 토끼같이 날쌘 말’을 뜻한다. 중국 위촉오 삼국시대 장수였던 관운장이 탔던 말로 알려졌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말이 걷는 순서=말은 천천히 걸을 땐 ‘왼쪽 뒷발-왼쪽 앞발-오른쪽 뒷발-오른쪽 앞발’ 순서로 움직인다. 달릴 땐 2박자 리듬으로 대각선 두 발이 동시에 움직인다. 말은 직선으로 똑바로 걷는다. 뒷발은 앞발이 지나갔던 부분을 곧게 뒤따라간다.
▽말은 더위에 약하다=겨울에 눈이 오면 강아지처럼 눈에 파묻혀 뒹굴고 좋아하지만 여름 더위엔 힘들어 한다. 더우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샤워장 앞에 줄을 선다. 모래밭에서 ‘모래 목욕’을 하기도 한다.
▽하루에 7번쯤 누워서 잔다=주위가 조용하고 안전하다고 판단될 땐 하루 1회 15분씩 7번 정도는 누워서 잔다. 그렇지 않을 땐 서서 자는 게 보통.
▽말 뒷발길질 힘은 엄청나다=보통 체격의 말 뒷발질은 시속 32km로 달리는 소형차와 충돌하는 충격과 비슷하다.
▽말은 정면에서 가까이 오는 물체나 바로 앞에 있는 물건은 잘 보지 못한다=말은 앞쪽은 잘 보지 못하지만 양 측면 시야가 넓다. 말에 가까이 갈 때는 옆쪽에서 비스듬하게 천천히 접근해야 한다. 뒤쪽에서 갑자기 접근하면 깜짝 놀라 발길질을 당할 수 있다.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