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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200번 웃기려고… 1000번 울었지요

입력 | 2007-04-06 03:31:00

200회 녹화가 끝난 뒤 SBS 공개홀 근처 식당에서 뒤풀이를 가진 ‘웃음을 찾는 사람들’ 제작진과 개그맨들. 이들은 “500회, 1000회까지 함께하자”며 건배했다. 사진 제공 SBS


200회 방송 맞는 SBS ‘웃찾사’

잔뜩 긴장한 채 표정이 굳은 남자들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팔을 휘두르며 몸을 푼다. 그래도 초조함이 덜 가셨는지 몇몇은 담배를 꺼내 피운다.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는 여자들도 뭔가를 중얼중얼 외우느라 분주하다.

이들은 면접장에서 대기 중인 지원자들이 아니다. SBS 오락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의 출연 개그맨들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SBS 공개홀 대기실은 ‘웃찾사’ 200회 특집 녹화를 앞두고 마지막 연습이 한창이었다.

이날 면접관은 방청객이었고 이들의 합격 여부는 방청석에서 터지는 웃음에 달려 있었다.

# 故 김형은 씨 영결식날도 무대 위서 웃고 까불고

녹화를 마친 뒤 제작진과 ‘형님뉴스’ 등 출연진은 공개홀 근처의 한 음식점에서 ‘200회 기념 뒤풀이’를 가졌다. 축하와 웃음이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뒤풀이’ 분위기는 진지했다. “OO팀은 지루했다” “OO는 다음부터 교체해야겠다” 등 냉정한 평가가 이어졌다.

“개그맨들은 그동안 무대 위에서 200번 웃기려고 무대 뒤에서 1000번 울었을 겁니다. 방청객과 시청자가 웃지 않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울죠.”(박상혁 PD)

박 PD는 “얼마 전 박보드레가 방청객 반응이 썰렁 하자 대기실에서 펑펑 우는 것을 봤다”며 “달래고 싶지만 연출자로서는 야단칠 수밖에 없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남자 개그맨들도 웃기지 못하면 속상해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다.

“‘웃찾사’ 1회부터 출연했는데 아직도 신인인 줄 아는 분들이 있어요. 방송에 1, 2분 나오기 위해 며칠을 밤새우며 연습하고도 편집되면 정말 눈물납니다.”(이우제)

개그맨들은 힘든 일이 있어도 직업의 특성상 웃음을 줘야 할 때가 가장 난처하다고 했다. 몇몇은 “2005년 ‘노예계약’ 파문으로 떠밀리듯 ‘웃찾사’를 떠날 때 무대 밖에서 남몰래 통곡했다”고 떠올렸다. ‘서울나들이’의 이동엽은 영화 ‘선물’에서 무명 개그맨(이정재)이 불치병에 걸린 아내(이영애)와 관객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한 비극적 장면을 “바로 우리 얘기”라고 했다.

“올해 1월 교통사고로 숨진 김형은의 영결식이 ‘웃찾사’ 녹화 날이었습니다. 웃고 까불며 방청객을 웃겨야 하는데 이를 악물게 되더군요. 개그맨들은 감춰진 얼굴이 하나 더 있어요.”(김재우)

# 웃음의 유전자를 가꾸는 사람들

넋두리가 이어지더니 곧 여기저기서 귀가 멍멍할 정도로 폭소가 터진다. 웃음의 달인들이 개인기를 뽐내며 서로를 웃기는 모습이 진풍경이다.

“프로그램 초반 시청률이 5, 6%에 불과해 폐지한다는 말도 여러 번 나왔죠.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벌써 200회라니….”(장재영)

첫 회부터 출연한 강성범은 “이젠 아래만 보이는 최고참 선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지’라는 유행어로 유명한 김재우는 “몸이 안 좋다”며 술잔에 사이다를 따르다가 동료들로부터 “이게 남자다운 모습이냐”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는 ‘웃찾사’가 “시청자와 보람이(백보람)의 사랑을 얻게 된 인생 최고의 기회”라고 말했다.

“제가 ‘엑스맨’을 연출했는데, 개성이 강한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인지 함께 만든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웃찾사’는 출연자들이 서로 ‘이렇게 하면 더 웃길 것 같다’며 돕는 게 힘인 것 같아요.”(임형택 PD)

이들은 자신들이 “웃음의 유전자를 타고 났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개그맨으로서 남을 웃기는 능력은 유전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늘 행복했던 사람은 웃음의 소중함을 잘 모릅니다. 배고픔과 설움 속에서 웃음을 그리워한 사람들이 그 소중함을 알기에 남을 웃길 수 있는 듯해요.”(이우제)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