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여기 새우젓 좀 더 주세요.”
보쌈집에서 삶은 돼지고기를 집어 들고 어김없이 챙기는 새우젓. 돼지고기를 새우젓과 함께 먹는다는 것은 오래된 상식이다. 양갈비에 민트 소스를 곁들이고, 수정과에는 잣을 띄워 마시는 것처럼. 이는 모두 ‘궁합’ 때문이다.
성격이 맞지 않는 남녀가 결혼하면 자주 다투는 것처럼 궁합이 맞지 않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면 맛이 없거나 몸에 탈이 나기 쉽다.
문제는 함께 먹지 말아야 할 음식 재료가 마치 환상의 궁합인 것처럼 잘못 알려진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점.
밥상에 단골로 등장하는 ‘기름 발라 구운 김’이 대표적인 예. 아무리 신선한 기름을 사용해도 공기와 햇빛에 노출돼 산화되면서 유해물질인 과산화지질이 생겨 몸에 좋지 않다.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seoul.intercontinental.com)의 정영덕 조리장은 “기름을 바르지 않고 구운 김을 간장에 살짝 찍어 먹거나 김에 기름을 바른 뒤 구워 바로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호텔은 요즘 ‘엉터리 음식 궁합 몰아내기’를 하고 있다. 궁합이 안 맞는 재료를 함께 쓰지 말자는 얘기다. 커피에 으레 따라 나오는 크림을 내놓지 않는 대신 우유를 제공한다. 맥주에 따라 나오는 ‘껍질 없는 땅콩’도 없앴다. 껍질이 없는 땅콩에 습기가 차면 아플라톡신이란 유해물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호텔 정수근 주방장의 조언으로 궁합이 맞지 않는 음식 재료를 소개한다.
◇야채
① 샐러리와 마요네즈
마요네즈는 샐러리의 단짝 소스로 통한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위해 샐러리를 먹으면서 고열량의 마요네즈를 곁들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럴 땐 요구르트 소스가 좋다. 요구르트의 상큼한 맛이 잘 어울린다.
② 오이와 무
오이를 자르면 ‘아스코르비나아제’라는 비타민C 분해효소가 생긴다. 이 물질은 무의 비타민C를 파괴한다.
③ 시금치와 두부
시금치에 든 수산 성분과 두부에 다량 포함된 칼슘이 결합하면 수산칼슘이 만들어져 칼슘 섭취를 막고 결석 가능성을 높인다.
④ 감과 도토리묵
감은 원기 회복에 도움을 주고 도토리묵은 열량이 적고 수분이 많아 다이어트에 좋다. 하지만 함께 먹으면 타닌 등 감의 성분이 도토리묵의 수분을 흡수해 변비나 어지럼증을 일으킬 수 있다. 감은 지방이 많이 든 음식과 같이 먹어도 변비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 훌륭한 철분 공급원인 동물의 간과 함께 섭취하면 감의 타닌이 철분의 흡수를 방해한다.
⑤ 수박과 튀김
수박의 많은 수분이 위액을 희석시켜 튀김요리의 소화를 방해한다.
⑥ 토마토와 설탕
토마토에 풍부한 비타민B가 몸에 흡수되는 대신 설탕의 분해에 사용된다.
◇육류
① 스테이크와 버터
스테이크용으로 쓰이는 안심과 등심에는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많이 함유돼 있다. 버터도 마찬가지. 함께 먹으면 콜레스테롤을 과잉 섭취할 수 있다.
② 돼지고기와 도라지
도라지는 기침과 천식이 있는 사람에게 좋은 음식이다. 하지만 돼지고기와 함께 먹으면 효능이 반감된다.
③ 쇠고기와 고구마
고구마와 쇠고기는 소화에 필요한 위산의 농도가 다르다. 두 음식물이 위에 오랫동안 머물면 소화 흡수를 방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생선 및 해산물
① 멸치와 시금치
시금치의 수산 성분이 멸치의 칼슘 흡수율을 낮춘다.
② 문어와 고사리
문어는 질겨 소화가 잘 안 되는 음식으로 꼽힌다. 고사리도 소화불량을 일으키기 쉬워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는 금기 음식이다. 이 둘을 함께 먹으면 소화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③ 장어와 복숭아
지방이 풍부한 장어와 복숭아를 함께 먹으면 복숭아의 유기산이 지방의 소화를 방해해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④ 바지락과 우엉
우엉에는 다량의 섬유질이 들어 있어 바지락의 철분 흡수를 방해한다.
⑤ 미역과 파
파는 미역에 다량 함유된 칼슘의 흡수를 막는다.
◇유제품
① 치즈와 콩
치즈와 콩은 모두 단백질 칼슘이 많은 영양 공급원. 하지만 함께 먹으면 콩의 인산과 치즈의 칼슘이 결합해 체외로 배출된다. 도로아미타불인 셈이다.
② 우유와 설탕, 소금
우유에 설탕이나 소금을 넣어 마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비타민 B1의 섭취를 방해한다.
③ 초콜릿과 우유
우유에 든 유지방과 초콜릿의 지방이 함께 몸에 들어오면 혈청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급격히 상승시킨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서양 요리도 상극이 되는 재료는 피하는 게 상식
원칙적으로 요리할 때 함께 쓸 수 없거나 쓰지 말아야 할 재료는 없다. 모든 요리에는 요리사만의 재료 선택 기법과 조리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요리학교 코리아(www.icif.co.kr)의 이정은 실장은 “하지만 재료의 맛을 각각 있는 그대로 표현해 주기 위해 상극이 되는 요리 재료는 가급적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 요리가 생선과 해물이라면 다른 재료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강한 향과 맛을 내는 재료는 피하는 게 상식이다.
특히 짠맛이 강한 치즈 같은 재료는 쓰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짠맛을 갖고 있는 해산물에 짠맛이 강한 치즈를 함께 쓰면 한 가지 맛(짠맛)을 강하게 내기 때문.
오징어 먹물로 만든 파스타에는 토마토소스를 쓰면 좋다. 색도 어울리지만 오징어 먹물에 밴 비릿한 맛을 중화시킨다.
라비올리나 토르텔리처럼 속을 채운 파스타는 고기를 이용한 소스나 토마토 소스를 피한다. 속의 재료 맛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데 맛이 강한 소스는 이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치즈가 들어간 요리에는 마늘의 사용을 최소화한다. 마늘과 치즈는 서로 개성이 강해 맛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디저트에는 작은 허브 잎이 종종 사용된다. 그렇다고 모든 허브를 디저트에 쓰진 않는다. 디저트의 향을 강하게 할 때 주로 쓴다. 특히 민트는 상쾌하고 신선한 느낌을 더해 주는 역할을 해 과일이 들어간 디저트에 어울린다.
허브는 재료의 역한 냄새를 없애고 음식의 풍미를 더하기 위해 쓴다. 로즈메리, 세이지, 타임 등 향이 강한 허브는 고기와 생선 요리에 많이 사용하지만 디저트 장식에는 잘 쓰지 않는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