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次期) 대통령 후보 중 한 사람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된 데 대해 “정부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피해를 보는 분야에 대한 지원 대책 등을 마련하고 한미 FTA가 국가 발전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국민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전자인가? 비평가인가?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관전자의 비평 같다. 정부와 기업, 국민이 함께 노력하는 데 있어 ‘나는 어떤 역할을 하겠다’는 발언의 주체는 보이지 않는다. 이 전 시장은 지난해 말 이래 대선 주자 선호도(選好度) 조사에서 40% 이상의 압도적 지지율로 부동(不動)의 1위를 고수(固守)하고 있다. 그가 국가적 의제(議題)에서 관전자나 비평가의 위치에 머무를 수 없는 이유다. 한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지도자가 되려 한다면 지지율에 걸맞은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아니, 아직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결정된 것도 아니고, 현재의 대통령과 정부하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없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공연히 나대다가 지지율 높다고 대통령 다 된 것처럼 ‘오버’ 한다는 비난만 듣기 십상 아닌가.
일리 있는 반론(反論)이다. 8월로 예정된 당내 경선은 발등의 불이다. 여론 지지율은 높다지만 여론 조사만 믿고 있다가 경선 선거인단(20만 명)의 절반을 차지하는 대의원과 책임당원들이 등을 돌린다면 끝장이다. 그러니 재·보선 공천에서 박근혜 전 대표 쪽에 밀릴 수 없고, 시도(市道) 당위원장에도 ‘내 사람’을 심어야 한다. 무엇보다 여권 주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여론 지지율은 언제든 꺼질 수 있는 거품일 수 있다. 그러니 잘나갈 때 조심하라고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이 전 시장의 발언은 대체로 신중하다. “북한 핵이 제거되면서 개방이 이뤄지면 북-미 수교 등 북-미 관계 개선을 적극 바라는 쪽이다. 한나라당은 평화를 원하지, 전쟁을 원하는 건 아니다.” “북한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으니까 그에 따라 당 정책도 달라지는 게 맞다.” “나는 무조건 친미(親美)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국익(國益)과 미국의 국익이 일치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변화도 요구한다. “낡은 보수, 꼴통 수구보수가 아닌 젊은 보수, 건강한 보수로 변해서 당을 화합시켜 정권을 잡아야 한다.” “세상이 시속 100km로 변하는데 우리가 99km로 변화하면 그것은 변화가 아니다. 우리는 착각하고 있다.”
틀린 말들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울림은 미약하다. 왜 그런가. ‘어떻게 대통령이 되는가’보다 ‘왜 대통령을 하려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대한 구체적 답이 없기 때문이다. ‘좌파정권’을 종식시켜야 한다면 대통령이 반드시 이명박이라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 기준이라면 오히려 박근혜가 ‘확실한 인물’일 수 있다. 이명박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이유는 그가 다른 건 몰라도 경제에서만큼은 눈에 보이는 실적을 올릴 수 있을 거란 기대 덕분이다. 이른바 ‘청계천 효과’다. 줄곧 시끄럽기만 했지 실속이 없었던 ‘노무현 반사(反射) 효과’도 이와 맞물려 있다.
그러나 그 약발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747 비전(7% 경제성장으로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어 7대 경제 강국을 만들자)’ 같은 현실성 없는 구호로는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이명박스럽게’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한다.
‘李-朴전쟁’에 매달린다면
우선 한미 FTA 국회 비준 동의에 앞장서야 한다. 현직 의원도 아니고 당에 지분도 없는 처지에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고 반문(反問)하지는 말기 바란다. 농촌 표를 의식해 반대하는 의원들을 만나 설득하는 한편 한미 FTA 이후 한국 경제의 미래상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노력으로 미래 성장동력을 저해(沮害)할 사회공동체의 분열을 추슬러야 한다.
그러지 않고 감동은커녕 새로울 것조차 하나 없는 ‘이-박 전쟁’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한다면 이명박의 위기는 빠른 속도로 심화(深化)될 것이다. 위기의 징조를 읽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심각한 위기가 아니겠는가.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