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단원 김홍도는 조선 최고의 화가 가운데 한 명이다. 우리는 흔히 단원을 풍속화가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단원의 진면목은 풍속화가 아니라 산수화 인물화 화조화(花鳥畵)에 있다. 그의 산수화를 보면 그윽한 시정(詩情), 탁월한 구도와 공간 감각에 탄성을 금할 수 없다. 한국 최고의 산수화가라고 할 수 있다.
단원의 위대한 성취는 그의 탁월한 능력에 힘입은 바 크지만 정조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다. 단원 미술의 절정기는 그의 나이가 50대로 접어들던 1790년대 후반이었다. 정조가 개혁과 문화 부흥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던 시기와 놀라우리만큼 일치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내용은 아직까지 일반 독자들에겐 별로 전파되기 않았다.
요즘 출판계에 18세기 바람이 거세다.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작된 현상이지만 그 열기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등 실학파의 글을 번역한 책은 물론이고 한두 개의 테마에 따라 재구성한 책, 18세기 화가와 일상 풍경 등을 다룬 책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실학자들의 개혁의 꿈을 다룬 팩션, 18세기 최고 협객의 삶, 무언가에 미쳐 열정을 바친 사람들, 알려지지 않은 전문가들의 삶과 사상을 다룬 책들이 선보이더니 최근엔 동시대의 정약용과 괴테를 비교한 책까지 등장했다. 최근 5년 사이 출간된 18세기 책은 매년 40여 권에 이른다.
18세기 열풍은 출판계만의 일이 아니다. 올해 초엔 서울에서 문화예술의 최대 후원자였던 정조에 관한 대중 강좌가 개설됐고, 3월 말부터는 경기 수원 화성(華城·1796년 축조)에서 정조시대의 무예 24기가 재현되고 있다.
18세기는 생동감 넘치는 문화 르네상스기였다. 지금의 열풍은 그 찬란했던 18세기를 재현하고픈 열망의 표현이다. 하지만 그 열기를 지속하기 위해 몇 가지 고민이 필요하다. 18세기 교양서들은 연구실 서당 박물관에서 귀중한 사료를 찾아내 한문 원본을 묵묵히 번역하고 연구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같은 1차 연구 성과를 가공해 책을 만드는 출판사들은 더욱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관심의 범위를 소외된 분야로 확장할 필요도 있다. 특히 음악 건축 과학분야 등이 그렇다. 18세기는 인문만의 시대가 아니라 과학 실용과 조화를 이룬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판 편집자나 독자들에게 18세기 문화의 현장을 찾아가보길 권한다. 문예부흥의 거점이었던 창덕궁 후원의 규장각 자리, 정조의 개혁의 꿈이 남아 있는 수원 화성을 거닐어보고 경기 남양주 정약용 생가를 찾아 다산이 만들었던 거중기 등을 만나본다면 18세기가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