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링 코스모스/남순건 지음·308쪽·1만5000원·지호
《끈이론은 진동하는 끈이 만물을 지배한다는 이론이다…앞으로 천년 동안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물리학 문제와 우주의 신비가 있다면 분명 끈이론이 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새로운 우주는 이제 막 열리고 있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1970년대 가수 서유석 씨가 부른 노래다. 가요계에서 흐르는 세월을 잡지 못하는 아쉬움을 노래하던 그즈음, 물리학계에서는 가는 세월을 정말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를 혁명적인 이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바로 ‘끈이론’이다. 우주의 모든 물질이 10-33cm 길이의 매우 짧은 끈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끈이론이 등장하기 전에는 모든 물질이 원자, 양성자, 중성자 등 아주 작은 입자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했다. 끈이론에서는 이 입자들이 모두 하나의 끈에서 나온다.
기타나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를 연주할 때 손가락으로 지판을 짚어 흔들리는 줄의 길이를 변화시키면 여러 가지 음이 나온다. 각기 다른 파장의 진동이 생기기 때문이다.
끈이론도 이와 비슷하다. 하나의 끈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진동하면 다양한 에너지와 질량을 지닌 입자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책의 표지에 언뜻 생각하면 우주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바이올린이 그려져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끈이론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통해 제시한 시공간 개념도 뒤흔들었다.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공간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지만 끈이론에서는 찢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도 있고, 심지어 먼 미래로의 시간 여행까지 가능해지는 것이다.
‘스트링 코스모스(String Cosmos)’에는 이처럼 놀라운 끈이론의 세계가 다양하게 담겨 있다. 끈이론의 탄생 배경과 주역들, 그들의 열정과 모험, 끈이론과 관련된 최신 우주이론 그리고 끈이론 연구에 참여한 한국인 과학자들의 이야기까지. 이 책의 저자 역시 끈이론의 실체 탐구에 매진해 온 물리학자다.
물리학 역사에 끈이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 말. 미국 시카고대의 요이치로 남부 교수, 스탠퍼드대의 레니 서스킨드 교수 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뒤 세계의 수많은 물리학자가 이 보이지 않는 끈의 실체를 찾기 위해 일생을 걸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인 저자는 가까이서 지켜본 세계적 물리학자들의 삶과 선의의 경쟁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놓는다. 그들은 어느 문학 작품 못지않게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해 물리학의 오래된 난제 해결에 다가선다. 제주도를 방문한 스티븐 호킹 박사가 검은색 셔츠를 입고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휠체어를 빙글빙글 돌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등 중간중간 곁들인 이야기가 저명한 학자에 대한 친근감을 더해 준다.
끈이론은 현대 물리학에서 가장 강력한 통합 이론으로 꼽힌다. 끈이론 하나로 우주의 4가지 힘(전자기력, 중력, 약력, 강력)과 모든 입자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끈이론을 ‘삼라만상의 원리’라고까지 말한다.
그렇다고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쓸모없어졌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저자는 현대 인류가 누리는 수많은 문명의 이기가 이 두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산업은 양자역학, 현대 천문학은 일반 상대성이론을 떠나선 설명이 불가능하다.
끈이론은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어떤 학자들은 21세기 물리학이 20세기부터 너무 성급하게 나온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한다. 그만큼 발전된 이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끈이론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실생활에 도움을 줄 만한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순수과학의 위력이다. 시공간을 연구하던 아인슈타인이 만든 유명한 방정식 ‘E=mc2’은 인류에게 원자력 발전의 혜택을 안겨 줬다. 물리학자들이 서로 의사소통하려고 고안한 월드 와이드 웹은 인터넷 혁명의 토대가 됐다. 끈이론 역시 우리에게 생활의 혁명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2007년은 끈이론 완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해다. 끈이론을 실험으로 검증할 초대형 입자가속기(LHC)가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처음 가동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끈이론을 완성하는 과학자가 21세기 물리학의 새 지평을 여는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서 있는 한국 물리학자들을 소개한다. 이들이 연예인의 한류 열풍에 조금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맹활약하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말이다.
책장을 덮은 뒤 눈을 감고 잠시 시간여행을 해 본다. 끈이론 완성에 결정적 기여를 한 한국인 과학자를 인터뷰하는 기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