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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싹트는 교실]포항 영일고

입력 | 2007-04-09 03:11:00

경북 포항시 영일고 댄싱팀 ‘에이블’이 6일 교내 연습실에서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 연습을 하고 있다. 동아리로 출발한 에이블은 교육인적자원부장관배 경연대회에서 4년 연속 대상을 받았다. 포항=이권효 기자

영일고 곽대용 국어 교사가 6일 저녁 자율학습시간에 ‘질의응답실’을 찾은 2학년 학생들에게 ‘과외 선생님’처럼 개인 지도를 하고 있다. 포항=이권효 기자


《“3년 동안 정말 즐겁게 공부했습니다. 영일고에 다닐 때 배웠던 색소폰도 한 번씩 연주하니 대학생활이 즐겁네요.” 3월 서울대 재료공학과에 입학한 김재형(19) 씨는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생활이 즐거워야 공부가 잘된다는 것이 영일고에서 배운 지혜”라며 모교 자랑을 했다. 영일고는 포항시 남구 연일읍 동문리의 사립 인문계 고교. 포항 도심과 떨어져 있어 읍면 소재 중학교 졸업생이 진학하는 학교라 내년부터 고교평준화가 도입되는 포항시내 학군에서도 제외됐다. 그러나 이제 전국 어느 학교도 이 ‘시골 고교’를 가볍게 보지 못한다.》

○ 학생에 의한 수업평가

자율학습시간인 6일 오후 8시. 학년별로 마련된 ‘질의응답실’이 부산했다. 문에는 ‘여러분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자습시간에 늘 열려 있습니다. 쉬운 문제도 풀리지 않을 때가 있지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2학년 질의응답실에서는 학생 10여 명이 국어과 곽대용(44) 교사를 ‘괴롭히고’ 있었다. 오후 11시경까지 이어지는 자율학습시간이면 학생들은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의 질문을 들고 질의응답실 문을 두드린다.

2학년 김다혜(18·여) 양은 “교실의 선생님들이 여기선 개인 과외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곽 교사는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질의응답실이 터져 나갈 정도”라며 “힘들기는 하지만 공부하겠다고 학생들이 줄을 서니 속으론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지난해 겨울방학 때부터 ‘선택형 방과 후 학교’를 도입했다. 보충수업시간인 매일 오후 4시 반∼6시 반 교사들이 마련하는 강좌를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수강생이 부족한 과목은 폐강된다. 1979년 영일종합고교로 개교한 영일고는 오랫동안 포항의 ‘주류 학교’에 속하지 못했다. 영일고로 교명을 바꾼 지 올해로 꼭 20년. 최근 영일고의 진학성적표는 화려하다.

올해 졸업생 276명 중 273명이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이 가운데 서울대 3명을 비롯해 고려대와 연세대 10명 등 수도권 대학에 132명이 진학했다. 10년 전만 해도 서울대는 꿈도 꾸지 못하고 수도권 대학에 8명이 진학하는 정도였다.

○ 발은 영일만에, 시선은 세계로

영일고가 괄목상대한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 최상하(71) 교장은 “오전 7시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생활하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면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즐거움(fun)은 이 학교의 발전에너지다.

영일고 1학년 280명은 누구나 색소폰, 플루트, 클라리넷 중 한 가지를 배운다. 입학하면 전교생이 모두 에어로빅을 배우며 조회 때도 ‘율동’으로 마무리한다. 신학기를 앞두고 올해 1월에는 교직원 57명 전원이 경북 경주시에서 즐거운 학교를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는 ‘펀 페스티벌’을 열었다.

영일고 학생들은 세계를 호흡한다. 분기별로 유명 인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영일아카데미’에는 종종 해외 석학들도 초청된다. 지난해 6월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윌리엄 보이드(교육학) 석좌교수가 ‘지식산업사회에서 성공 조건’을 강연했다. 독도 영유권 문제로 한일 양국이 갈등을 빚던 2005년 4월에는 2학년 280명이 일본 교토(京都)로 수학여행을 가 ‘독도, 한국땅! 이를 알리려고 합니다’라고 씌어진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11일 이 학교 학생 5명은 서울 나들이를 떠난다. 건국대에서 열리는 200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로저 콘버그 박사의 강연을 들으러 나서는 것이다. 경비는 학교 측이 전액 지원한다.

포항=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