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는 1883년 3월 14일 사망했다. 살아있다면 189세다. 그가 부활해 노숙자로 현대를 살아간다면 어떤 일기를 쓸까. 오스트리아의 동명이인 소설가가 그 가상(假想) 일기를 소재로 2003년 ‘자본론 범죄’라는 추리소설을 썼다. 이 소설에서 마르크스는 “신적(神的) 존재가 될 수 있었는데 ‘공산혁명 결과 낙원이 도래한다’고 입방정을 떠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자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과학적 진리’라던 예언적 역사관과 경제 결정론의 실수를 인정한 것이다.
▷그래도 영국의 BBC 라디오가 2년 전 청취자를 대상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를 조사한 결과 마르크스는 27.9%를 얻어 흄(12.7%) 비트겐슈타인(6.8%) 니체(6.5%)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를 보고 좌파 진보학자들은 “공산권은 몰락했지만 마르크스이론이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문제 설명에 유효하다는 증거”라며 기세를 올렸다.
▷최근 영국 국방부가 30년 뒤를 예측해 펴낸 ‘미래전략환경전망보고서’에서도 마르크스의 부활 가능성이 예고됐다. “슈퍼리치(초부유층)와 중산층 간의 경제격차가 커지면서 중산층이 도시빈민층과 연대해 계급혁명의 주도세력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도덕적 상대주의와 실용적 가치가 팽배해지면서 대중이 마르크스주의 같은 교조적 이념에 더욱 빠지기 쉬울 것이라는 얘기다. ‘이념논쟁은 종언(終焉)을 고했다’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식 논리에 대한 반론인 셈이다.
▷개방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세계화로 인한 양극화의 ‘그늘’에도 대비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승자독식(勝者獨食)’구조의 확대에 따른 빈부격차의 심화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문제는 ‘마르크스의 우려’의 본질은 잊은 채 ‘극단적 민족주의’로만 치닫는 한국의 좌파(左派)다. 마르크스가 오늘 한국에 온다면 북한만 오매불망 쳐다보며 끌려 다니는 우리 사회의 좌파를 향해 “내 본뜻을 왜곡 말라”고 질타할 듯싶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