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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신인석]고급 인력 떠나면 FTA도 힘 잃는다

입력 | 2007-04-11 02:59:00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비교우위’라는 경제용어가 일상화되고 있다. ‘비교우위’는 19세기 초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정리한 개념이다. 그는 포르투갈의 와인과 영국의 양모를 예로 든다. 두 나라가 각각 비교우위가 있는 이들 상품 생산에 특화할 때 양국 국민이 소비할 수 있는 와인과 양모의 양이 극대화된다는 설명이다. ‘비교우위론’은 이제 가장 보편화된 경제이론에 속한다.

리카도는 왜 포르투갈의 와인을 예로 들었을까. 중세에도 최고의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산이었다.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영국은 보르도 와인의 주요 소비시장이었지만 문제는 두 나라의 정치적 갈등이었다. 15세기 백년전쟁을 비롯해 크고 작은 전쟁이 양국 간 교역을 위축시키곤 했다.

18세기 초 다시 프랑스와 전쟁을 한 영국은 보르도 와인에 대한 대체재로서 포르투갈 와인을 찾게 된다. 그 결과 영국과 포르투갈은 1703년 양모와 와인에 대해 상호 관세를 대폭 인하하는 ‘메수엔 조약’을 체결한다. 18세기판(版) FTA다. 이 조약으로 영국이 수입하는 포르투갈 와인이 대폭 증가한다. 리카도가 포르투갈 와인을 거론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포르투갈 몰락 재촉한 인재 이탈

메수엔 조약은 포르투갈 와인산업을 발전시켰지만 보호주의자들은 이 조약을 비판한다. 영국 양모에 시장을 빼앗긴 포르투갈이 산업화의 계기를 잃어버렸다는 주장이다. 한때 해양 강국의 위용을 자랑하던 포르투갈이 영국에 와인을 많이 수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후진 경제국으로 전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다른 데 있었는데 그것은 리카도의 가족사와도 연관이 있다.

리카도의 조상은 ‘세파르디’ 유대인으로 지칭되는 포르투갈 거주 유대인이었다. 가톨릭 국가이면서 민족주의가 강했던 포르투갈은 유대인 등 이민족 이교도를 심하게 박해했다. 리카도의 조상은 메수엔 조약이 체결될 무렵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한다. 금융과 상업의 귀재였던 세파르디 유대인의 네덜란드 이주는 16∼18세기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고급 인력의 이동이었다. 이들은 자유로운 네덜란드에서 다른 민족 상인들과 함께 장기를 발휘했고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를 만든다. 네덜란드가 국제금융과 상업의 허브가 된 중요한 배경이 이것이다.

18세기에 네덜란드의 유대인과 다민족 상인 일부는 자유주의적 정치 환경이 네덜란드와 비슷했던 영국으로 재이주하게 된다. 리카도의 아버지도 거기 끼여 있었다. 그는 아들을 암스테르담 거래소에 ‘실무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암스테르담의 ‘금융지식’과 ‘고급 인력’은 다시 런던으로 이동했다. 국제금융 허브의 이동이다. 분명한 것은 포르투갈 몰락의 원인은 ‘포르투갈의 리카도’를 불과 100여 년 만에 ‘영국의 리카도’로 내몬 편협한 폐쇄주의라는 점이다.

특정산업의 비교우위는 보통 경제 발전과 함께 사라진다. 자동차 조선 철강산업의 비교우위가 1970년대 미국에서 일본으로, 90년대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한 것은 최근 사례일 뿐이다. 영국도 양모업과 대부분의 공업 제품에서 비교우위를 잃었다. 그러면서도 영국이 포르투갈과는 달리 선진국의 지위를 유지해 온 것은 리카도와 같은 외국 고급 인력의 유입, 그리고 자체적으로 고급 인력을 키워 내는 교육 경쟁력에 중요한 비결이 있었다.

국민경제가 환경 변화로 새로운 도전과 경쟁에 직면하는 일은 다반사다. 문제는 이를 극복할 ‘혁신’과 ‘구조조정’ 역량을 해당 국민경제가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국제화된 경제 환경에서 이 책무는 ‘세계화된 고급 인력’의 몫이다. 세계화된 고급 인력의 유출이 포르투갈의 몰락을 재촉했다.

美유학생 돌아오게 할 대책 있나

한미 FTA 체결이 기대감을 낳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한국은 미국에 유학생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다. 조기유학을 떠난 저들이 돌아온다는 보장은 있는 것인가. 한미 FTA로 일부 산업의 수출이 확대돼도 포르투갈이 그랬듯이 고급 인력을 잃는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밝지 않다. 우리가 진정 폐쇄보다는 개방이 발전의 동력이라고 믿는다면 이제는 교육과 고급 인력 유입 정책을 심각히 생각해 봐야 한다.

신인석 객원논설위원·중앙대 교수 ishin@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