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측근인 안희정 씨의 대북 비밀 접촉 논란과 국민연금법 개정안 부결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10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논란의 장본인인 안희정 씨에 대해 “(위법 사항에 대해 통일부가 주의를 주는 것에) 해당 사항이 없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노 대통령의 오전 발언에 화답하듯 이날 오후 통일부가 “남북교류협력법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발표한 모양새가 이런 지적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달 안 씨가 지난해 10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북측 인사를 만난 사실을 통일부에 사전·사후에도 신고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여부 등 법적 조처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내가 듣기로는 사후 신고를 하지 않으면 그냥 주의·경고하는 수준으로 처리한다고 들었다. 어떠냐?”고 묻자 이를 안 씨에 대한 처리 여부로 알아들은 듯 “지금 결정할 사안은 아니고…”라고 답했다. 통일부가 이날 오후 급히 ‘문제없다’고 발표한 것은 발표가 급조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와 안 씨 및 안 씨와 동행한 권오홍 씨의 실정법 위반 여부를 묻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질문에 “관련법규를 위반했다면 그에 대한 응분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 자신이 이날 “이번 문제는 해당 자체가 없다”고 ‘가이드라인’을 그어버린 셈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 장관과의 6차례 문답 끝에 이 장관에게서 “이번 사안은 (민간인이 대북 접촉 후 사후 신고를 하지 않으면 통일부가 주의·경고하는 것에) 해당 사항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을 끌어냈다.
노 대통령은 “사전 신고해야 하는 것이냐”, “사후 신고도 가능한 일이지요”, “성격상 대통령이 특별히 지시했기 때문에 사전 신고할 일은 아니다”며 질문과 주장을 펼쳤다.
노 대통령이 가이드라인 제시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가 1997년 대통령선거 때 광범위한 불법감청을 했던 이른바 ‘X파일 사건’이 2005년에 터지자 노 대통령은 “1997년 대선후보를 다시 대선자금 문제로 조사하는 그런 수준까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당시 이 발언은 삼성의 대선자금 제공 부분에 대한 대통령의 검찰 수사 간섭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또 안 씨가 2003년 12월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됐을 때도 ‘착복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사실상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대통령의 직무행위라 해도 법 규정과 절차를 지켜야 하며 위반할 수는 없다”면서 “노 대통령의 발언으로 만약 다른 민간인이 대북 접촉을 한 뒤 사후에 보고하지 않았다 해도 통일부가 처벌하기 어렵게 됐다. (처벌한다면) 법 적용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