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아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경기 수원시의 화장장인 연화장. 주민들의 불쾌감을 줄이기 위해 외관디자인에 신경을 쓰는 한편 주민들이 화장장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사진 제공 연화장
서울시립 벽제화장장에 이어 제2화장장 터로 정해진 서초구 원지동 추모공원(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부근 청계산 5만 평)에 대한 대법원 판결 선고가 12일로 다가왔다.
법원이 1, 2심에 이어 최종심에서도 소송을 제기한 주민 대신 서울시 손을 들어줄 경우 법적인 걸림돌은 사라지게 된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해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무난히 승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 결론이 나오는 대로 건립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승소하더라도 실제 건립까지는 험난한 길이 남아 있다. 현재로서는 주민의 반대를 동의로 되돌릴 만한 매력적인 ‘당근’이 없기 때문이다.
○ 오랜 대화가 유일한 민원해결 방법
원지동 추모공원은 2001년 추모공원건립추진위원회가 서초구 원지동을 제2화장장 터로 결정한 이후 주민들의 반발과 소송에 휘말리면서 7년째 표류 중이다. 2003년에는 당초 20기였던 화장로 수를 11기로 줄이고 국립의료원을 청계산으로 이전하는 절충안이 마련돼 급물살을 타기도 했지만 정부의 반대로 ‘국립의료원 이전’ 카드가 백지화되자 다시 건설이 무산됐다.
관할 서초구는 제2화장장 터가 성남(화장로 15기), 수원(9기) 화장장과 가까운 만큼 청계산에는 화장로를 3, 4기만 설치하고 나머지는 화장 수요가 많은 동북권과 서남권에 분산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초구 관계자는 “화장장도 중요하지만 일일 이용객이 10만 명에 이르는 청계산이 크게 훼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화장 수요와 공급을 따져 볼 때 입지 자체가 잘못 선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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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지동 추모공원의 사례는 ‘혐오시설 건립 반대=지역이기주의’로 몰아가는 단순 접근법으로는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풀기 힘든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전문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내나 외국이나 화장장, 소각장 같은 혐오시설을 꺼리는 정서는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행정당국의 합리적 제안에 아예 귀를 막고 법, 조례의 규정조차 무시하며 폭력사태로까지 치닫는 일부 주민들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행정당국도 절차적 민주성과 투명성을 확보해 가며 끈기 있게 해당 지역 주민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
‘장사시설의 수급계획 및 정책방향’에 관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인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김경혜 선임연구위원은 “남들이 싫어하는 시설을 건립하려면 해당 지역 주민을 설득하고 또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며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느 곳을 선정하더라도 항상 반대가 뒤따르므로 시간을 갖고 대화하며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해결방법이라는 것이다.
○ 민관 모두 승리한 수원 연화장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는 대다수 후보지들과는 달리 2001년 문을 연 수원시 연화장(경기 수원시 영통구 하동)은 보기 드문 성공 사례로 꼽힌다.
1990년대 인계동 화장장 주변에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이곳에 있던 화장장의 시 외곽 이전이 추진돼 1995년 하동 일대가 후보지로 결정됐다. 당시 하동 지역 주민들은 시청 앞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이는 등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수원시는 주민대표들을 해외에 보내 선진 장묘시설을 둘러보게 하고, 간담회와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설득작업을 벌였다. 결국 2년 이상의 마라톤협상 끝에 낙후된 하동 일대에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하고, 화장장 내 매점, 화원, 식당 등의 운영권을 주민들에게 주는 내용의 합의가 도출됐다.
장묘시설이 기피시설이라는 점을 감안해 건축 디자인에 신경을 쓴 결과 연화장은 언뜻 보면 미술관으로 착각할 만큼 뛰어난 건축미를 갖추게 됐다. 완공 이듬해인 200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했을 정도다. 현재 연화장 내 장례식장은 주민 176명이 설립한 주식회사가 운영하고 있다. 주민 48명은 장묘시설이 동네에 들어온 덕분에 새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