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의 신입사원 김주표(27·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 졸업) 씨는 한때 대학가의 잘나가는 ‘래퍼’였다.
대학에 입학한 뒤 힙합 동아리를 만들어 각종 가요제에서 상도 탔다. 2005년 대학가요제 본선에도 진출했다. 대학 4학년 때는 케이블 방송의 비디오자키(VJ)와 게임 전문 MC로도 활동했다.》
“‘느낌’이 오면 푹 빠지는 성격입니다. 무모할 정도로 적극적이죠. 공부에 그다지 미쳐본 적이 없는 게 가장 아쉬워요.”
대학 성적은 ‘별로’다. 학점은 3점대 초반이다. 4점대가 즐비한 요즘 취업 준비생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는 점수다. 토익(TOEIC) 975점이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성적표다.
그가 취업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친구들조차 놀랐다. 하지만 그를 뽑은 제일기획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끼’와 열정을 무엇보다 높이 샀다는 것이다.
“사지마비 장애를 딛고 미국 존스홉킨스대 수석전문의가 된 이승복 박사님의 수필집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를 읽고 무작정 e메일을 보냈어요. 답장을 받고 미국까지 찾아가 이 박사님을 만났습니다.”
책을 읽다가 마음이 움직이면 저자에게 직접 e메일을 보낼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이다. 미국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 가수 엘튼 존, 일본작가 에쿠니 가오리 등에게도 e메일을 보낸 경험이 있다.
“공중파TV 아나운서가 아니면 제일기획에 입사하겠다고 목표를 정했어요. 떨어지면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겠다고 생각했죠.”
대학 4학년 때 취업 목표를 아나운서나 광고회사의 홍보(PR) 전문가로 잡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나운서 시험에서는 모두 떨어졌지만 유일하게 원서를 낸 기업인 제일기획의 공채 서류 전형에서 통과됐다. 삼성 계열사인 제일기획은 ‘서류전형-직무적성검사시험(SSAT)-면접(임원, 프레젠테이션, 영어, 토론)’으로 최종 합격자를 뽑는다. 서류 전형은 학점 3.0 이상(4.5만점), 토익 900점 이상이면 통과할 수 있다. 이어 직무적성검사로 2, 3배를 추리고, 면접에서 최종 합격자를 가린다. 임원, 프레젠테이션, 영어 면접은 15∼20분 진행된다. 지원자 3명이 특정 주제를 토론하고 결론을 내는 ‘토론 면접’은 1시간 동안 치러진다.
그는 “삼성그룹 공통의 SSAT 외에 창의력과 순발력 등을 측정하는 광고 직무적성검사를 치르는 필기시험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사랑과 우정’이나 ‘냉정과 열정’ 등의 주제어를 주고 생각나는 대로 그림으로 표현하라거나 ‘창과 문’이라는 주제어를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서 서술하라는 식의 허를 찌르는 문제 때문이었다.
면접 전형에서는 그의 다양한 경험이 빛을 발했다. 프레젠테이션 면접에서는 게임 전문 MC 경험을 살려 게임 형식을 빌린 온·오프라인 마케팅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VJ로 활동하며 익힌 화술과 진행 경험이 있어 면접에서 떨지 않았다”며 “친구들이 ‘왜 취업준비를 하지 않느냐’고 묻곤 했는데,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게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라틴어로 ‘Spero Spera(살아 숨쉬는 한 희망이 있다)’는 말이 있어요. 기회가 주어지면 무엇이든지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인사담당자의 한마디▼
제일기획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도 공감을 줄 수 있는 아이디어, 사람에 대한 애정,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내는 열정, 탐구정신과 리더십 등을 갖춘 인재를 선호한다. 김주표 씨는 면접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끼’를 발산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다양한 경험은 제일기획에서 일하는 데 강점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리더십이 있는 듬직한 성품과 업무 관련 기본 소양 또한 좋았다.
글=박용 기자 parky@donga.com
사진=이훈구 기자 uf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