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을 돌아본 뒤 마지막 소감은 간단했다. 산은 장한데 사람들은 산의 부속물 같다는 느낌이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남산에 다닥다닥 붙어 기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남산은 큰 산은 아니지만 빌붙어 사는 사람들에 훼손당하면서도 그런 걸 크게 개의치 않는다.》
600년 수도 서울의 속살 들여다보기
비가 내리면 우산을 받치고 경복궁을 휘 돌아보고 나온 때가 있었다. 세월이 쌓여 이뤄 놓은 풍치를 즐길 공간이 가까이에 있음을 고마워하며 옛 건물, 정원, 수목이 어우러진 고궁의 멋을 드문드문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만끽하곤 했다.
그러나 600년 동안 수도였던 도시임을 생각하면, 그런 멋을 즐길 곳이 기대만큼 많지 않다. 그것이 어찌 서울뿐이랴! 유서 깊은 한국의 대도시는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거의 없다. 오래됐으면 오래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상식일 텐데 그렇지 못하다. 전통과 현재가 적절하게 조화를 보이며 공존함으로써, 수십 년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사람이 살아온 체취를 느끼며 살고 싶다는 것이 분에 넘치는 욕심일까?
20세기 들어 기형적으로 발전한 도시가 최근 수십 년 동안 급속도로 팽창해 온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서울에 오래 거주한 사람이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 문화의 속 깊은 멋과 맛을 즐기기 어렵다. 그러니 서울을 잘 알고 잘 설명해 주는 전문가의 안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도시의 중심축인 종로를 버리고 옛 성곽을 따라 탐사하고 있다. 남산 지역을 먼저 훑고 다음에는 동대문, 낙산, 성북동, 북악으로 발길을 돌린다. 서울 시민이면 누구나 잘 알 것만 같은 남산이지만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아는 것도 찾아가 본 것도 그리 많지 않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 장충단이니 남산 성곽은 그래도 이름을 들어서 아는데 국사당 터, 와룡묘 등은 생소하다.
민속신앙을 연구하는 전공자답게 민속신앙의 자취와 종교적 건축물을 설명하는 데서 진가를 발휘한다. 의외로 그런 유적이 적지 않다. 관우를 모시는 동묘와 와룡묘도 있고, 일본 신사의 자취도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정성 들여 소개한 유적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정원과 고가(古家)다. 혜화문, 삼군부 총무당, 이화장을 비롯해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닐 수 있는 명소를 소개했다. 저자는 낙산공원과 성락원, 칠궁 두세 곳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새로운 관광지로 등장한 청와대 옆의 칠궁과 새로 조성된 낙산공원은 답사 의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개인적으론 성북구에 소재한 성락원이란 아름답고 운치 있는 옛 정원을 소개받은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저자는 이 정원이 성북동의 기적이라고까지 말한다.
이 책은 고궁 같은 유명한 역사 유적보다는 구석구석에 숨어서 발길을 기다리는 문화 유적을 드러내려는 시도가 장점이다. 오래된 것만이 아니라 최근 것까지도 문화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것이면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저자도 인정하듯이 많은 문화 유적이 뒤떨어진 문화감각으로 덧칠해져 있거나 방치돼 있다. 시민의 발걸음을 유혹할 공간을 만드는 노력이 절실함을 서울기행에서 확인하게 된다.
안대회 명지대 국문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