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죽음/차윤정 지음/268쪽·1만5000원·웅진지식하우스
유한한 인간 수명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수백 년 된 고목 앞에 서면 존경심이 절로 든다. 오래된 숲과 고목을 신성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베이거나 불타지 않는 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 같은 나무. 이 책은 다소 낯선, 나무의 ‘자연사(自然死)’ 과정을 세밀한 관찰 결과와 서정적인 문체로 조곤조곤 설명한다.
나무는 살아 온 날만큼의 죽은 조직을 지녔다. 썩은 줄기와 파릇한 잎이 한 몸인 나무. 저자의 표현처럼 ‘생과 사가 공존하는 삶’이다. 나무는 생전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지만 죽음 이후의 ‘삶’에서는 숲 생물이 살아갈 터전이 된다. 그래서 저자는 나무의 죽음을 “나무가 숲에 주는 위대한 유산”이라고 말한다. 나무의 성장은 나무가 숲의 자원을 사용하는 과정이지만 나무의 죽음은 자원을 숲에 되돌리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보여 주는 나무의 죽음은 한마디로 오래된 나무가 선 채로 죽고 쓰러져 분해되고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과 그사이 잉태되는 생명들의 삶이다.
150여 장의 나무와 숲 사진은 나무의 죽음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사진의 숲은 생기 없고 칙칙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놀랍고 또 한편으로 엄숙하다.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죽은 조직이 늘어간다. 장수하늘소가 썩어 가는 굵은 줄기를 산란 터로 삼는다. 딱따구리는 약해진 나무껍질에 구멍을 뚫어 터전을 만든다. 갈라진 나무에서 흐르는 수액은 작은 곤충들의 달콤한 음료가 된다. 나무좀이 나무껍질 안쪽에 알을 낳고 기생벌은 나무좀의 애벌레 속에 산란을 한다. 물기가 흐르는 나무껍질에는 이끼가 붙어 자란다. 이끼 사이로 고사리가 터를 잡는다.
어느 순간 나무는 땅으로 쓰러진다. 깊게 파인 구멍에 족제비가 몸을 숨긴다. 토양에서 침입한 균사(菌絲)가 나무 사이에 파고들어 버섯을 피운다. 버섯은 달팽이를 부르고 버섯벌레를 키운다. 쓰러진 나무에 낙엽이 몰리고 흙이 쌓인다. 나무는 점차 부스러져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다. 그러고는 흙으로 돌아간다. 길고도 장엄한 해체의 드라마다.
‘신갈나무 투쟁기’와 ‘숲의 생활사’에서 나무의 일생과 숲 생물들의 삶을 치밀하고도 감동적으로 보여 줬던 저자의 치밀한 관찰과 열정이 이번에도 돋보인다. 산림학은 과학이고 과학은 차가운 이성의 영역이지만 문장마다 따뜻한 감수성이 넘쳐나 전혀 딱딱하지 않다. 사진마다 어느 숲의 모습인지 설명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