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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허엽]신문기구 통폐합의 함정

입력 | 2007-04-17 19:51:00


신문법에 근거해 2005년 말 출범한 신문발전위원회(신문위)와 신문유통원을 기존 언론기구와 통폐합하는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한국언론재단 및 지역신문발전위원회(지발위)와 업무가 중복된다는 이유에서다. 총예산이 1000억 원을 웃도는 이들 네 기구의 업무 중복은 세금 낭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최근 외부인 5명으로 구성된 ‘통합로드맵 연구팀’을 구성했으며 ‘연구팀’은 7월경 보고서를 낸다.

출범 2년도 안 된 신문위와 유통원을 둘러싸고 통폐합 논의가 나온다는 것은 신문법이 졸속 제정됐다는 점을 보여 준다. 신문법은 열린우리당과 현 정권이 4개 ‘개혁 입법’의 하나로 제정했다. 신문위를 통해 신문사에 돈을 직접 지원하거나 융자해 주고 유통원으로 배달망을 만들면 이른바 ‘언론 개혁’이 이뤄진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더구나 유통원은 배달 소외지역보다 배달 장벽이 없는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망을 구축하고 있다.

정부의 돈을 받은 신문사가 어떻게 정부를 감시하며, 국고 지원으로 이뤄진 배달망에서 비판이 어떻게 전달되느냐는 문제는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동아 조선 중앙의 과점 때문에 신문 시장이 실패했으니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좌파 성향의 언론학자들과 언론운동 진영도 팔 걷고 나섰다. 이들은 ‘광화문에 큰 빌딩을 가진 신문사’들의 기를 꺾기 위해 거의 모든 수를 ‘다걸기(올인)’하려 했다.

네 기구를 통폐합하자는 논의는 뒤늦게 신문법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팀’ 구성을 보면 오류를 인정하기는커녕 더 확대할 듯하다. 연구팀은 권혁남(전북대) 김창룡(인제대) 문종대(동의대) 최영재(한림대) 교수와 김주언 전 신문위 사무총장이다. 이 중 중도적 태도를 견지해 온 최 교수를 빼면 나머지는 특정 신문 때리기에 앞장서 왔다.

김 전 사무총장은 ‘이승복 보도 진위’와 관련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내부 규정(결격 사유는 공무원에 준함)에 의해 자동 면직됐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공무원이 될 수 없다. 문화부는 “연구팀은 공직이 아니어서 괜찮다”고 하지만, 특정 신문들에 편견을 가진 그가 정부 보고서를 만드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이해하기 어렵다.

김 교수는 특정 신문을 비난해 온 KBS ‘미디어 포커스’에서 패널로 활동했고, 권 교수도 현 정권의 ‘언론개혁’을 주장해 왔다. 문 교수는 신문 시장점유율을 3개사 40%(공정거래법 75%)로 강력 제한하는 방안을 내기도 했다. 신문법의 시장점유율 제한 조항은 위헌 판결을 받았다.

이런 전력을 보면 통폐합 논의 결과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문화부는 법 시행 성과를 평가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하지만, 이미 법 제정과 시행에서 관료의 한계가 여러 차례 드러났다.

유진룡 전 차관이 6개월 만에 갑자기 해임된 것도 신문 관련 기구를 둘러싼 청와대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한 공무원은 “법 제정 때 특정 조항이 무리라고 하면 ‘반개혁이냐’며 쏘아붙이는 통에 말문을 닫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통폐합 논의도 문화부가 주도한 게 아니라 언론운동 진영이 법 제정 후부터 바람을 잡았다. 한 언론학자는 “신문법의 문제는 특정 신문 때리기에 매몰돼 시장과 법정 기구의 효율성을 무시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들이 통폐합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다시 ‘세금 먹는 괴물’이 나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허엽 문화부차장 heo@donga.com

[밝혀왔습니다]

4월 18일자 A34면 ‘신문기구 통폐합의 함정’ 칼럼에서 동의대 문종대 교수가 신문 시장점유율을 3개사 40%(공정거래법 75%)로 강력 제한하는 방안을 냈다고 했으나, 문 교수는 “시장점유율이 아니라 여론점유율로, 이는 여론시장을 대상으로 전체가구 대 각 신문의 발행부수를 기준으로 하므로 신문법의 시장 지배적 사업자보다 느슨한 기준이다”고 밝혀 왔습니다.

(게재일 : 2007.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