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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답지 않은 변화… 김기덕다운 고집… 26일 개봉 ‘숨’

입력 | 2007-04-18 03:11:00


《모든 예술가는 나름의 추구하는 바가 있고 작품마다 변화하고 싶은 바도 있다. 전자는 바꾸기 어려운 작가의 세계관이며, 후자는 새로운 창조물에 대한 열망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도 그의 독특한 세계인식과 변화의 열망 사이를 시계추처럼 반복하며 변주된다. 그의 영화는 그동안 원형적인 세계에서 인간을 보고 세상의 통념을 전복했다. 창녀-여대생, 선-악, 피해자-가해자의 이분법 구도를 관객 스스로 깨보라는 그의 화법은 ‘도전’이었다. 이런 도전은 그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변주되며 나선형으로 진화한다. 그렇다면 나선형을 추동시키는 핵은 무엇일까? 그것은 ‘초월’이다.》

○목숨을 초월의 대상으로 삼아

26일 개봉하는 그의 14번째 작품 ‘숨’은 사형수이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장진(장전)에게 남편의 외도로 고통스러운 연(지아)이 면회를 오면서 서로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이다. 장진은 연을 통해 삶의 의욕을 얻는다. 그러나 장진을 통해 상처가 치유된 연은 장진의 숨을 막으려 한다. 이는 사랑의 극점과 목숨의 극점은 동일한 지점임을 말하려는 감독의 의도 때문일 것이다. ‘숨’은 목숨을 초월의 대상으로 삼은 영화다. ‘숨’에서 김 감독은 장진과 연의 면회를 모니터로 지켜보는 보안과장으로 언뜻언뜻 얼굴을 내비친다. 보안과장은 단순한 관음을 넘어서 운명을 관장하는 ‘신’과 같다. 그는 보안과장이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 인생이 ‘운명’의 감시 아래에 있으며 운명을 ‘초월’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화해로 끝나… 이전의 영화와 달라져

김기덕의 영화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부터 ‘초월’을 전면에 드러냈다. 스님이 신통력으로 배를 움직이거나 스님이 입었던 옷만 남고 뱀이 그 속에서 기어 나오는 장면이 그 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데뷔작인 ‘악어’에서부터 현실을 초월하는 것은 죽음뿐임을 보여줬다. 그러다가 ‘육체’가 죽지 않아도 초월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빈집’부터 보인다. ‘빈집’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함께 올라간 저울의 눈금이 ‘0’이었다는 것이 그 예다. ‘시간’은 어떤가? 사랑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깊게 빠진 사람에게는 집착이 되고 덜 빠진 사람에겐 싫증이 되는 지점에 이른다. 그 지점에 선 연인들의 고통을 그린 이 영화는 시작과 끝이 동일한 장면이다. 이는 공간을 고정하고 시간을 확대한 것이다. 집착의 고통을 초월하는 방법은 ‘시간’을 초월하는 길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동일시간으로 표현해 ‘시간’은 다시 회귀하지만 이는 반복재생일 뿐. 결국 인간은 시간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한다.

그런데 ‘숨’의 끝부분에서 연은 외도를 했던 남편과 화해하게 된다. 목표를 이룬 끝에는 파멸과 죽음이 있다는 삶의 아이러니를 구현하던 그간의 영화와는 다른 방향이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펼쳐지는 장진과 관련된 또 다른 결말은 그의 도전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15번째 영화에서도 그가 보여 주는 에피소드는 달라지겠지만 여전히 그는 치열하게 삶의 극점에서의 ‘초월’을 추구하면서 ‘도전’의 끈을 놓치지도 않을 것이다.

황영미 영화평론가·숙명여대 의사소통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