샅바싸움 같았다.
17일 오전 10시 24분. 소비심리 회복세에 기대 힘차게 출발한 신세계 주가는 전날보다 1만3000원 급등하면서 삼성전자와 똑같은 59만 원에 이르렀다.
이어 삼성전자의 반격으로 주가는 몇 차례 엎치락뒤치락했다.
장 마감 결과 신세계가 삼성전자를 1만6000원 앞서면서 60만90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신세계 주가가 삼성전자 주가를 종가기준으로 처음 추월한 것이다.
신세계는 2000년 1월 4일 5만6000원에서 7년여 만에 10배 이상 수준으로 급등하는 놀라운 상승속도를 보여줬다.
○ “회사 덩치와 주식시장 평가는 다르다”
삼성전자와 신세계는 기업 규모나 국제적 위상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신세계보다 각각 8배, 10배 많다.
시가총액도 삼성전자가 신세계의 8배에 이른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의 ‘평가’는 다르다.
기업의 이익(2007년 기준)과 주가 수준을 비교한 주가수익비율(PER)은 삼성전자는 약 11배, 신세계는 18배로 삼성전자가 더 낮다.
일반적으로 고성장의 정보기술(IT) 업종은 높은 PER로 거래되고 성장속도가 더딘 유통 업종은 낮은 PER로 거래된다. 이익이 같다면 성장성이 높은 기업의 주가가 더 비싸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신세계 주가는 이런 상식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익의 성장성 측면에서 신세계가 삼성전자보다 낫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신세계의 영업이익은 2003년 4455억 원에서 지난해 7098억 원으로 59.3%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7조1920억 원에서 6조9339억 원으로 오히려 소폭 줄었다.
○ 할인점 선점으로 시장 지배력 강화
신세계는 일찍부터 부유층 대상의 백화점 영업 대신 서민층과 중산층을 겨냥한 할인점 시장의 선점에 적극 나섰다.
국내 할인점은 기존 재래시장 영역을 야금야금 공략하면서 시장규모가 2000년 약 10조5000억 원에서 지난해 25조5000억 원으로 142.9% 성장했다.
신세계는 같은 기간 할인점 이마트의 점포를 27개에서 107개로 확대하고 시장 점유율도 22.5%에서 34%로 끌어올렸다.
민영상 CJ투자증권 기업분석팀장은 “삼성전자는 반도체 등 대외시장 여건과 해외업체 경쟁 등 변수가 많았던 데 비해 신세계는 시장 내 독점적 지위로 안정성과 성장성을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 신세계첼시 등 새 성장 동력 확보가 관건
삼성생명의 상장(上場)도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세계의 삼성생명 보유 지분은 13%로 장부가로 58억 원에 불과하지만 현재 장외가로는 1조6000억 원에 이른다.
신세계가 계속 삼성전자 주가를 추월할 수 있을지는 전망이 엇갈린다.
박진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신세계가 내수 기업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새 성장 동력으로서 성공적인 중국 진출과 신세계첼시, 신세계마트(옛 월마트)의 충실한 제 역할 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연도별 할인점 시장의 증가율은 2002년 26.2%에서 지난해엔 8.3%로 떨어졌고 최근 정부의 신규 출점 제한도 위협이 될 수 있다.
유재성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하반기(7∼12월) 반도체 경기가 바닥에 이르면 삼성전자가 다시 시장의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