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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총기난사 용의자는 한국인]리브레스쿠 교수의 살신성인

입력 | 2007-04-18 03:14:00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16일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의 홀로코스트를 애도하는 기념일. 바로 이날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인 이 대학 리비우 리브레스쿠(76·사진) 기계공학과 교수는 자신의 강의실에서 제자의 총탄에 희생됐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희생이었다고 예루살렘 포스트가 17일 보도했다.

리브레스쿠 교수는 사건이 발생한 16일 응용수리학 강의를 진행하던 중 강의실을 침입한 괴한을 막기 위해 몸을 던졌다고 그의 수업을 들었던 이스라엘 학생 아사엘 아라드 씨가 이스라엘 군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전했다.

이날 그의 강의실에 있던 다른 학생들은 리브레스쿠 교수의 아내 말레나 씨에게 e메일을 보내 그가 어떻게 범인을 막아 학생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자세히 전했다고 그의 아들 조가 전했다.

이스라엘 수도인 텔아비브의 교외에서 전화로 인터뷰한 조는 “아버지는 강의실 문을 몸으로 막아선 뒤 학생들에게 피하라고 말했다”며 “학생들은 강의실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기계공학 분야의 연구는 삶 자체였다”며 “버지니아공대는 아버지가 연구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고 전했다.

리브레스쿠 교수는 어린 시절 러시아의 노동자 수용소로 보내졌다가 동네 주민들에 의해 목숨을 건졌다. 리브레스쿠 교수의 아버지는 나치에 의해 추방됐던 인물.

과학자로서 루마니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독재정권에서 일해야 했던 리브레스쿠 교수는 루마니아 외부의 아무와도 접촉할 수 없는 신세였다. 그러나 그는 비밀리에 과학논문을 출간하기 위해 이런 금지규정을 계속 위반해야만 했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유대민족주의 운동인 시오니즘에 심취한 그는 1978년 루마니아를 떠나 이스라엘로 향했다. 이스라엘에 정착해 아들 둘을 키운 그는 1986년 안식년을 얻어 버지니아공대에 왔다. 1년간 머물 예정이었지만 새로운 연구 환경을 찾은 그는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정착했다고 그의 아들이 전했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리브레스쿠 교수의 시신을 이스라엘로 옮길 계획이라고 예루살렘 포스트가 전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