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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동관]‘불쏘시개’는 쉬운가

입력 | 2007-04-18 19:27:00


올 대선 가도에 떠오른 화두(話頭) 가운데 하나가 ‘불쏘시개론(論)’이다. 연초 범(汎)여권의 유력 대선예비후보로 거론돼 온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여당 쪽의 영입설에 “불이 꺼져 가니까 나를 불쏘시개로 이용하려 한다”며 발끈한 것이 시발점이다. 2탄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쏘았다. 그는 한나라당 탈당 직후 “새 정치세력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불쏘시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에 앞서 대선 불출마 선언부터 하라”는 비판을 부른 발언이다.

불쏘시개론은 요즘 범여권 언저리에서 벌어지는 예비주자 간의 탐색전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연탄불 피우게 당신이 내 불쏘시개가 돼 달라”는 것이 각 주자의 공통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정 전 총장의 ‘독자창당론’이나 손 전 지사의 ‘제3세력론’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범여권에 끌려 들어가 자칫 불쏘시개가 될지 모른다’는 경계심도 깔려 있다. 대권 꿈을 도중에 접은 고건 전 국무총리도 여권 쪽의 영입 타진이 있을 때마다 이런 경계심을 보였다.

‘도토리 키 재기’식 경쟁이지만 범여권 주자 중 지지율 선두인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측의 계산은 반대다. 자천타천 범여권 예비후보가 총출동하는 오픈 프라이머리(국민경선제)가 벌어지면 당내 기반이 상대적으로 강한 만큼 승기를 잡아 지지율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쏘시개감이 많을수록 좋다. 백의종군론을 거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도 불쏘시개론이 조금씩 나온다. 손 전 지사의 탈당으로 ‘수구-영남당’ 이미지가 강해진 데다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의 ‘찻잔 속 대결’에 국민이 식상했다는 자가진단이 근원이다. 전여옥 최고위원이 최근 위기론을 제기하면서 “비영남 출신 제3후보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4·25 재·보선에서 대전 서을이나 일부 지자체장 후보가 낙선하면 제3후보 필요론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당내에서는 홍준표 의원, 당 바깥에서는 이석연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와 박세일 서울대 교수가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박 두 후보 쪽에서 모두 공을 들이는 정몽준 의원은 후보단일화 합의 파기라는 ‘경력 세탁’을 위해 한나라당 입당을 검토 중이지만 시기는 경선 후로 잡는 듯하다.

하지만 연탄불을 피우겠다면 최소한 불을 피우려는 이유와 삼천리든, 대성이든 성분분석표가 딸린 상표라도 먼저 보여 주는 것이 소비자인 국민에 대한 도리다. 그런데도 대부분이 그저 불쏘시개를 구하는 데만 혈안이다.

사실 좋은 불쏘시개가 되는 거야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시대적 역할에 대한 성찰과 사생관(死生觀)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경선에 불복해 탈당한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비판은 민주주의를 이기적으로만 해석한 사람들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다. 따지고 보면 그나마 정동영 전 의장의 현재 입지도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경선 지킴이’라는 불쏘시개를 자처한 것이 발판이었다.

문득 ‘연탄재 함부로 걷어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연탄시인 안도현의 시 구절이 생각난다. ‘연탄재’를 ‘불쏘시개’로 바꿔 대선 예비주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