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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러닝타임 3시간 반, 정통연극 맛보려면 이정도 ‘시련’쯤은…

입력 | 2007-04-19 03:01:00

모처럼 무대에 오른 정통극 ‘시련’. 시진 제공 서울예술의전당


자꾸 가벼워져만 가는 요즘 연극을 우려하는 이들은 말한다. 연극을 보는 일은 집에서 TV를 보는 것처럼 편하고 즐거워서는 안 된다고. 연극을 보는 작업은 조금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거라고. 그럼 대체 왜 힘든 연극을 봐야 하느냐고?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 중인 ‘시련’(연출 윤호진)은 이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는 정통 극이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관객의 입맛에 맞춰 ‘러닝타임 90분’이 황금 법칙처럼 여겨지는 요즘 ‘시련’은 그 세 배가 넘는 시간인 3시간 반 내내 웃음이나 잔재미 같은 ‘양념’ 없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스타일을 앞세운 연출 대신 모처럼 배우를 중심에 놓은 연출 역시 작품처럼 우직하다.

‘시련’의 배경은 1692년 미국의 작은 마을 세일럼. 10대 소녀 아비게일(이승비)의 주도로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사랑하는 남자 프록터(김명수)를 차지하려는 아비게일이 프록터의 아내를 저주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주민들은 살기 위해 거짓 자백을 하고 서로를 악마로 지목하면서 순식간에 마을 전체가 광기어린 마녀사냥에 휩쓸린다. 악마로 몰린 아내를 구하기 위해 프록터는 아비게일과의 간통 사실까지 고백하며 집단적 광기에 맞선다.

고전이 빛나는 것은 늘 현재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서 밀러가 1950년대 불어 닥친 매카시즘을 비판하기 위해 쓴 이 희곡은 17세기를 무대로 하고 있음에도 집단적인 논리와 획일적인 이념 속에서 개인은 숨죽여야 했던 우리 현대사의 장면들과도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20, 30대 여성이 주 관객인 다른 연극과 달리 객석에는 40, 50대 장년층과 남성 관객이 많이 눈에 띈다. 하지만 양심과 정의, 두려움, 도덕, 심판, 존엄성, 그리고 집단의 폭력성을 말하는 이 작품의 주제는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하는 청소년에게도 권할 만하다.

프록터와 함께 분노하고, 프록터와 함께 절망하다 보면 어느덧 마지막 4막에서 관객들은 프록터와 똑같은 갈등을 겪게 된다. 해가 뜨면 사형에 처해지는 프록터. 살 수 있는 길은 악마를 봤다는 거짓 고백과 참회를 하는 것뿐. 프록터는 굴복하며 부르짖는다.

“난 성자처럼 태연히 교수대에 올라설 수가 없어. 그건 위선이야.”

동이 막 터 오는 순간 프록터는 ‘깃발을 휘날릴 만큼 충분하진 않지만 개자식들에게 더럽혀지지 않을 만큼은 순결한’ 한 조각의 고결함으로 집단적 광기에 맞선다.

연극이 끝나는 순간 질문은 시작된다. “나라면?” 3시간 반을 견딜 만한 충분한 이유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