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싱가포르콘래드호텔 야외에서 열린 말레이시아 태생 중국인 셰프 청류(호주 애들레이드힐튼호텔 수석 요리사·가운데) 씨의 컬리너리 워크숍. 동서양의 조화를 이룬 요리로 미국의 유명 음식잡지에서 세계 10대 요리사로 선정됐다.
미슐랭 스타(별 한 개) 레스토랑인 벨기에의 레어뒤탱 주인이자 셰프인 상훈 드젬브르. 네 살 때 보육원에서 동생과 함께 벨기에 가정에 입양된 그는 싱가포르 월드구어메이서밋에 초대된 최초의 한국인 셰프다. 사진 제공 레어뒤탱
상훈 드젬브르 씨가 선보인 연어와 참치를 활용한 요리들. 분자요리학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싱가포르가 ‘지구의 부엌, 세상의 주방’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사나흘의 여행이면 충분하다. 인도 말레이 프라나칸(중국+말레이) 중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는 물론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과 신대륙(호주 미국)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다.
음식이란 문화의 총체적 표현. 역사와 기질, 자연이 거기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다민족 다종교의 싱가포르는 ‘세계 미식의 수도(capital of world gourmet)’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싱가포르 최고의 음식행사로 손꼽히는 것은 매년 4월 열리는 싱가포르 월드구어메이서밋(World Gourmet Summit·세계미식가대회)’, 지금 한창인 이 미식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
세계 최고 요리사들이 펼치는 요리올림픽
월드구어메이서밋 축제 4월 말까지 대성황
한국입양아 출신 상훈씨 벨기에 요리천재로
한국계로 최초 참가… 과학적 요리로 호평
○ 구어메이 사파리, 간판 이벤트로 성장
기자에게 월드구어메이서밋은 특별하다. 미식기행의 시작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11년 전인 1997년 4월 저녁. 기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열네 명의 구어메(미식가)와 함께 앉아 무려 다섯 시간에 걸친 식도락 ‘여행’을 체험했다. ‘여행’이라 표현한 이유는 한곳에 앉아 음식을 맛보지 않고 코스별로 식당을 옮겨 다니며 맛을 즐기는 행사였기 때문. 이름 하여 ‘구어메이 사파리’다.
시작은 차임스(고풍스러운 옛 수녀원 건물을 개조한 식당가)의 캘리포니아 레스토랑. 전식은 인도식당에서 탄두리 치킨으로 했고 메인코스는 클라크 키(싱가포르 강변)의 태국식당에서 즐겼다. 마지막으로 리젠트호텔의 브래서리에서 후식을 맛보는 긴 여정이었다. 코스마다 별도의 와인이 나왔고 식당마다 셰프(요리사)가 설명을 했다.
당시 일행 가운데 음식 해설을 맡은 이가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구어메이 잡지를 발행하면서 싱가포르관광청과 함께 그해 처음 문을 연 월드구어메이서밋을 기획한 셰프 출신의 독일인 피터 크니프 씨였다. 해박한 지식과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미식투어를 즐겁게 만든 그의 음식에 대한 열정과 노력. 그것이 기자의 미식기행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11년 후인 지난 주. 기자는 싱가포르 강변의 레스토랑 타운하우스에서 크니프 씨와 다시 만났다. 똑같은 ‘구어메이 사파리’에서 한 사람은 손님으로, 다른 한 사람은 해설자로. 원래 이날 행사는 ‘리버 사파리’였다. 싱가포르 강변의 식당 세 곳을 골라 보트를 타고 이동하면서 여섯 코스의 디너를 즐기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다. 그런데 비가 내려 리버 사파리는 취소됐고 대신 트롤리 버스로 식당을 도는 형태로 바뀌었다. 덕분에 기자와 크니프 씨는 11년 만의 재회를 11년 전과 똑같은 행사에서 즐기는 행운을 누렸다.
월드구어메이서밋이 추구하는 것은 세 가지. 고품격의 요리(Fine Cuisine)와 기막힌 와인(Great Wines), 그리고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식사(Unique Dining). 이 세 가지를 추구한 월드구어메이서밋은 그 성공을 발판으로 지난 11년간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다. 매년 행사 규모가 커졌고 셰프와 다이닝의 수준도 일취월장했다.
매년 스타일을 바꾼 구어메이 사파리를 보자. 지난해에는 센토사 섬에서 야외식사로 진행됐는데 귀중한 문화유적인 실로소 요새의 마당에서 벌인 메인코스 다이닝은 모든 참가자가 감동할 만큼 훌륭했다. 문화재를 식사공간으로 개방할 만큼 이 행사에 대한 정부의 기대와 지원은 막강했다. 올해는 ‘리버 사파리’와 ‘와일드 사파리’ 형태로 마련됐다.
○ 미슐랭 스타 셰프들 매년 초청
유럽의 식당에는 ‘미슐랭 스타’라는 등급이 있다. 등급은 별 하나부터 세 개까지인데 별 한 개만 받아도 그 명성은 하늘을 찌른다. 등급을 매기는 사람은 ‘미식의 성서’라고 불릴 만큼 이 분야에 권위가 있는 ‘미슐랭 가이드’(레스토랑 여행지 안내책자)의 편집진. 미슐랭 스타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데 식당은 물론이고 그 식당의 마스터 셰프(수석요리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미식가라면 누구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싶어한다. 음식 맛도 보고 요리사까지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 그러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찾는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영광을 누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월드구어메이서밋이 미식가의 관심을 불러 모은 것은 그런 ‘한계’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월드구어메이서밋은 매년 미슐랭 스타 셰프를 7, 8명씩 초청한다. 그리고 싱가포르 내 특급호텔의 레스토랑과 짝을 지어준다. 그러면 호스트 호텔과 초청 셰프는 행사기간 내내 호텔별로 특별한 미식행사를 마련해 미식가들의 식도락을 돕는다.
그러면서 초청 셰프는 월드구어메이서밋이 자체적으로 기획한 여러 식도락 이벤트(디너 및 요리강습)에도 나간다. 이들 이벤트는 인터넷을 통해 미리 티켓을 구매한 사람만 초대되는 특별한 미식행사. 1, 2월에 일찌감치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디너행사의 경우 식사를 모두 마치면 참석자와 대화를 나누고 사인도 해 준다. 멀리 유럽까지 날아가지 않고도 미슐랭 스타 셰프의 음식을 맛보고 대화까지 나눌 수 있다는 점. 이것이 월드구어메이서밋의 매력이다.
올해 초대된 스타 셰프(미슐랭 스타 요리사)는 모두 7명. 별 세 개의 하인츠 빙클러(독일) 씨를 비롯해 2명의 별 두 개, 4명의 별 한 개 요리사가 싱가포르에 모였다. 그중 한 명은 아주 특별한 요리사. ‘상훈’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벨기에의 ‘레어 뒤 탱’(식당) 주인이자 요리사다. 한국에서 태어나 네 살 때 벨기에 가정에 입양된 그는 17세 때부터 와인웨이터(소믈리에)로 일하다 독학으로 요리를 터득해 식당 문을 연 지 2년 6개월 만에 미슐랭 스타로 등극한 요리천재다. 11년째인 월드구어메이서밋에서도 한국계로는 그가 처음이다.
그는 ‘분자요리학’이라는 아주 새롭고 특별한 분야의 셰프. 그래서 이번 행사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끌었다. 분자요리학이란 식재료의 배합을 통해 새로운 맛과 모양의 창조에 집중하는 과학적인 요리방식. 그는 12일 저녁 프랑스 와인메이커인 E 귀갈 주최의 빈트너 디너에 요리사로 참가해 100여 명에게서 찬사를 받았다. 또 다음 날 열린 요리강좌에서는 분자요리학의 진수를 직접 선보여 박수를 받았다.
○ 음식과 식도락을 한 공간에서
3주 동안 70개의 식도락 이벤트가 펼쳐지는 싱가포르 월드구어메이서밋. 세계 최고 수준의 셰프와 싱가포르 특급호텔의 고급레스토랑,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와인메이커가 참가한다.
미식행사로는 △에피큐리언 딜라이츠(초청 셰프가 호스트호텔에서 펼치는 특별디너) △빈트너 디너(초청된 와인메이커와 셰프가 공동 기획하는 디너로 음식과 조화를 이룬 다양한 빈티지의 와인 셀렉션이 초점) △와인 테이스팅(특정 와인메이커의 다양한 빈티지 체험)이 있다.
이벤트로는 △구어메이 사파리 △컬리너리 마스터클래스(요리강습) △세레나 서트클리프와 함께하는 와인 워크숍 △르 코르동 블뢰(세계적인 요리스쿨) 디너 등이 있다. 세레나 서트클리프(소더비 국제와인부문 책임자) 씨는 세계 최고 수준의 와인평론가로 22일 그랜드하얏트싱가포르 호텔에서 2시간 동안 8가지 와인을 함께 맛보면서 각 와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미식가라면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것 하나. 이 행사에 쓰이는 모든 식재료는 파트너십을 통해 특정제품으로 정해져 있는데 모두가 세계 최고급이라는 점이다. 생수는 파나와 펠레그리노(스파클링), 샴페인은 파이퍼, 와인글래스는 미카사, 주방기구는 밀레, 초콜릿은 카카오베리 등. 주스폰서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로 티켓을 이 카드로 결제하면 10∼15%, 혹은 100싱가포르달러까지 할인해 준다.
:여행정보:
◇싱가포르 ▽항공 △운항=인천∼싱가포르 직항, 6시간 20분 소요. 싱가포르항공은 주 24회(매일 3편, 화금일요일 각 1편 추가) 운항 중 △싱가포르항공 Holidays 스프링스페셜=44만9000원짜리 에어텔 패키지. 항공권(서울∼싱가포르 이코노미석)과 호텔 2박(2인 1실 기준·조식 포함), 공항과 호텔 간 셔틀버스, 티켓링크 문화상품권(2만원) 포함. 5월 31일까지 www.siaholidays.co.kr 02-755-1226 ▽웹 정보 △싱가포르=www.singapore.com △싱가포르관광=www.visitsingapore.com(영어) www.visitsingapore.or.kr(한글)
◇싱가포르 월드구어메이서밋 2007년 행사정보 △기간=4월 9∼28일 △장소=싱가포르 시내 특급호텔(7곳)과 레스토랑(14곳) △참가 요령=에피큐리언 딜라이츠, 빈트너 디너 등 초청 셰프의 특별요리 시식행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에 티켓 구입 △홈페이지=www.worldgourmetsummit.com
싱가포르=글·사진 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