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의 가족을 칼럼에서 다루기로 결심하기까지는 사흘간의 망설임이 필요했다.
미국시간 17일 오전 11시경(한국 시간 자정), 기자는 버지니아주 센터빌에 있는 조승희의 부모집 앞에 서 있었다. "16일 오전 발생한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사건의 범인은 한국 국적의 조승희"라는 경찰 발표를 듣자마자 달려왔지만 문은 잠겨 있었고 전화도 끊긴 상태였다.
소박한 중산층 동네의 타운홈(단독주택 여러 채가 세로로 붙어 있는 형태)을 바라보고 있자니 낯선 땅으로 이민 와 세탁소 종업원으로 일하며 고생한 끝에 겨우 중산층으로 올라선 한 가족의 15년 세월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했다.
방학 때면 부모가 세탁소에 휴가를 낸 뒤 함께 500km 떨어진 학교까지 데리러 갔고 개학 때면 다시 데려다 주며 애지중지한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32명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가슴이 쓰려왔다.
그럼에도 조승희의 끔찍한 범죄와 무고한 희생자를 생각하면 그의 부모에 동정심을 품는다는 것조차 망설여졌다. 글로 쓴다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혼란스런 마음에 돌아오는 차안에서 중얼거렸다. '경찰 발표부터 이 모든 것이 사상 최대의 오보(誤報)이기를….'
그러나 취재현장에서 만난 미국인들의 태도는 달랐다.
한 싱크탱크 연구원은 "조는 성인이다. 누가 조의 부모를 비난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희생자들을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이던 여성도 "조의 부모도 또 다른 피해자"라고 말했다. 버지니아공대의 카운슬러도 CNN 인터뷰에서 서슴없이 "조의 부모는 얼마나 괴롭겠느냐.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발표 몇 시간 전인 16일 밤 조의 부모에게 사실을 설명한 뒤 외부의 손길에 시달리지 않을 곳으로 데려가 보호 중이라는 소식도 생소한 한편 신선하게 들렸다.
동정할 가치도 없는 살인마의 가족을 배려하고 그들을 공개적으로 당당히 위로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용기의 문제에 앞서 책임의 본질을 명확히 규정해 접근하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조가 한국 국적이라는 사실에 대다수의 미국인이 신경을 쓰지 않으며 "국적이 무슨 상관이냐. 한국에서 총 쏘기를 배워온 것도 아닌데"라고 반응하는 사실과도 맥이 닿는다.
물론 미국에서도 대중의 호기심을 좇는 상업주의가 이 같은 배려를 무색하게 만드는 경우는 많다. NBC의 조승희 동영상 방영을 둘러싼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최근 일부 미국 언론은 조승희 누나의 이름, 직장 이름까지 보도했다. 심지어 일부 한국 언론마저 이를 따랐고 누나의 대학시절 사진까지 신문에 실렸다.
가해자의 가족에게도 공개적으로 위로의 말을 전하며 세심히 배려하는 태도, 이에 반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가해자 가족의 신상까지 낱낱이 공개하는 모습…. 엄정한 공적윤리와 무책임이 공존하는 미국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느껴졌다. 두 가지 중 배워야 할 모습은 전자(前者)라는 착잡한 단상과 함께.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