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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싹트는 교실]인천 세일고 “공부해서 제자 주자”

입력 | 2007-04-23 03:01:00

21일 인천 세일고 과학실에서 교내 과학 동아리인 ‘유레카’ 소속 학생들이 실험을 하고 있다. 교사의 재교육에 힘쓰고 있는 세일고는 실력 있는 교사들이 논술특강, 심층면접 등 각종 강좌를 펼쳐 학생들이 입시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다. 인천=차준호 기자


《20일 오후 7시 반경 인천 부평구 세일고등학교 통합논술 교실. 인도의 전통적 순장제도였던 ‘사티제도’를 놓고 3학년 학생들 간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박찬웅(17) 군은 “사티제도는 생명의 존엄성이란 보편적 가치에 반한다. 따라서 문화적 상대성을 중시하더라도 옹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말문을 연 김태경(19) 군은 “힌두교 여성에게 사티제도는 신성하고 윤리적인 의무였다. 남편과 죽어서도 함께하고픈 여성의 애틋한 사랑으로 볼 수 있다”고 반박했다. 30분간 논쟁이 지속된 뒤 정병남(42·통합논술 팀장) 교사는 통합논술문제를 제시하고 글을 작성하도록 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쓴 글을 놓고 ‘대면 첨삭’을 해 줬다.》

이 학교에서는 수업을 마친 뒤 논술학원 등 입시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학생들은 “실력 있는 교사들이 정열을 갖고 지도해 주기 때문에 학원에 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1983년 개교한 세일고는 ‘일등 교사가 일등 학생’을 만든다는 교육이념으로 ‘명문고교’로 변신한 학교. 60명의 교사 중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가 40%(24명)에 이른다.

“수준 높은 교육이 이뤄지려면 교사가 먼저 공부해야 한다”는 이병희(74) 교장의 교육신념 때문.

대학원에 입학한 교사에게는 담임을 맡기지 않는 등 업무 부담을 줄여 준다. 매년 3명씩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세일고가 명문고가 되기까지 많은 시련이 있었다.

1989∼1991년 3년간 이 학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의 학내 시위로 내홍을 겪었다. 당시 50여 명의 교사 중 20여 명이 시위에 참가해 정상 수업이 어려웠다. 급기야 교육인적자원부와 인천시교육청은 해당 교사를 직위해제하겠다고 통보했다. 지역에서는 세일고에 가면 ‘대학 문턱에도 못 간다’란 인식이 확산됐다.

하지만 이 교장은 “시위 참가 교사를 내가 책임지겠다”며 징계를 풀어 줄 것을 교육 당국에 요청했다.

그리고 시위 교사 3명을 교무부장 등에 임명해 학교를 위해 일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해 학생들을 위해 좀 더 공부할 것을 독려했다.

교장의 행동에 감동을 받은 교사들은 “한뜻으로 뭉쳐 명문고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이 교장은 “학교 책임자로서 교사를 보듬어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후 교사들이 발 벗고 나서 자율학습과 보충학습 지도를 펼치는 등 학생지도에 전력투구했다”고 말했다.

현재 교육방송(EBS)에서 생물 과목 강의를 맡고 있는 송점섭(46) 교사는 “부단히 자기 계발에 노력한 상당수 교사가 성심껏 학생을 지도해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지역에서 학교 위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교사의 노력과 이를 믿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로 인해 세일고는 최근 3년간 졸업생 중 50%가 서울 소재 대학에, 40%는 경기 인천 소재 대학에 입학했다.

올해는 서울대 8명, 포스텍(포항공대) 2명, 한국과학기술원(KAIST) 2명, 연세대와 고려대 39명, 의대 10명, 한의대 8명, 약대 6명이 입학해 명문고로 위상을 높여 가고 있다.

학부모 오경애(48) 씨는 “교사들이 방학 때도 화학교실, 생물경시대회, 논술특강을 열어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을 느낀다”며 “3학년의 경우 사교육을 받는 학생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학교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고 말했다.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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