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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42년 잉그리드 버그먼 ‘카사블랑카’ 계약

입력 | 2007-04-24 03:04:00


“키스는 키스일 뿐, 한숨 역시 한숨일 뿐. 세월이 흐르면 원래로 돌아가는 것을.”(재즈 ‘As Time Goes By’ 중에서)

1930, 40년대 미국 할리우드는 공장이었다. 엇비슷한 스튜디오 영화를 수없이 찍어냈다. 배우와 스태프, 감독도 기획에 맞춰 조합했다. 찍고, 개봉하고, 상영되고, 잊혀졌다.

하지만 권총 ‘토카레프’는 대량생산임에도 1만 정 중 하나는 명작이 나온다고 했던가. 영화 ‘카사블랑카’는 0.01%의 걸작 토카레프였다.

속내는 사실 조악했다. 코미디작가까지 손을 댄 대본은 “개연성도 없는”(감독 마이클 커티즈) 허섭스레기였다. 시간에 떼밀려 결말도 정해지지 않은 채 촬영에 들어갔다. 100% 널빤지로 세워진 세트에서의 촬영. 모로코의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단 한 번도 로스앤젤레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완성된 대본도 허점투성이였다. 가난한 아프리카 시장에 양복 차림의 신사가 넘쳐 났다. “성실한 청소부는 길거리도 번쩍이게 닦아 놓았다.”(니콜라우스 슈뢰더의 책 ‘영화’에서) 도피 중인 레지스탕스가 줄 잡힌 흰색 슈트를? 흠뻑 젖은 트렌치코트는 몇 분 뒤 깨끗해졌다. 스크린을 틀어놓고 찍은 유명한 드라이브 신은 당시 기술로 봐도 형편없었다.

그러나 뛰어난 출연진이 이 모든 결점을 가렸다. 대다수 조연배우들은 나치를 피해 온 유럽 이민자였다. 타향살이의 정서가 오롯이 묻어났다. 그중에서도 1942년 4월 24일 계약한 스웨덴 출신 잉그리드 버그먼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27세 신출내기 여배우의 아련한 눈망울. 숨이 막혔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Here’s looking at you, kid).”

무엇보다 ‘릭’이 있었다. 당대의 카리스마 배우 험프리 보가트. 까칠한 말투의 45세 중년은 비릿한 회한으로 은막을 압도했다. ‘냉소 속에 숨겨진 로맨티시스트’는 관객에게 카사블랑카라는 ‘아름다운 우정의 시작’을 선사했다.

그 남자의 한숨, 그 여자의 키스. 주제가의 속삭임과 달리 묻히지 않았다. 그해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을 휩쓸었다. 미국시나리오작가조합이 뽑은 ‘가장 위대한 시나리오’. 시간이 지날수록 활활 타오르는 고전이 됐다. 걸작이 의구(依舊)함은 인걸(人傑)의 힘이었다. 돈이 아니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