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새벽 발생한 4층짜리 서울 중구 남대문로 쪽방건물의 3층 화재 현장. 중구청 현황 조사에 따르면 남대문 일대 쪽방촌에는 700가구 75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임우선 기자
“볕도 안 드는 쪽방에서 혼자 살다 이렇게 가다니…. 10년간 찾아 헤맨 불쌍한 내 동생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요.”
23일 오후 서울 중구 저동 백병원 영안실. 노년의 두 남녀가 서로 안고 오열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날 오전 3시경 중구 남대문로 5가 일명 ‘쪽방촌’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이모(49) 씨의 형(63)과 누나(58).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이렇게 살이 빠졌을까. 처음에 나는 내 동생이 아닌 줄 알았어요. 법 없이도 살 아이가 가난 때문에 평생 고생만 하다 저세상으로 갔어….”
숨진 이 씨의 형제들은 “막내가 1998년 친구와 조그만 사업을 시작했다 사기를 당해 전세금까지 날린 뒤 사라져 10년이 지나도록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학교만 마치고 경북 안동에서 서울로 올라와 봉제공장 보조 일을 하면서도 홀어머니를 모시던 효자 동생이었다.
이 씨가 살던 쪽방촌의 주민들은 대부분이 일용직에 종사하는 중장년층이거나 오갈 곳 없는 독거노인들. 이들은 성인 한 명이 간신히 몸을 누일 수 있는 작은 방에 하루 7000원을 내고 살고 있다. 1층에 10여 개의 1평 남짓한 방이 어른 팔뚝 하나만큼씩 간격을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웃 주민들은 “이 씨도 3년 전 이곳에 정착해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 왔다”고 말했다.
불길이 시작된 3층은 모든 것이 재로 변해 있었다.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던 재래식 화장실의 변기마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쪽방 건물에는 창문이 없거나, 있어도 쇠창살로 막혀 있었다. 비상구나 스프링쿨러는 고사하고 마땅한 물줄기를 찾는 것조차 힘들다(사진).
이 때문에 숨진 이 씨 외에도 독거노인 이모(82) 씨가 전신에 4도 화상을 입는 등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쪽방촌 통장인 최두리(51·여) 씨는 “꽉 막힌 좁디좁은 건물에서 불이 나다 보니 희생이 더 컸다”며 “죄다 불쌍한 사람들뿐인데 그나마 있던 세간마저 다 잃었으니 살아남은 사람도 어찌 살아야 할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