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행시 21회 동기… 충청-영남-호남 지역 안배도
국세청이 24일 실시한 고위직 인사는 차기 청장 후보를 물색하기 위한 본격적인 검증 작업의 성격이 짙다.
특히 이번 인사로 청장 후보 ‘빅3’로 통하는 국세청 본청 차장과 서울지방국세청장, 중부지방국세청장이 각각 행정고시 동기에다 지역적으로도 충청 영남 호남 출신으로 포진됐다는 점에서 이 같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한상률 차장은 충남 태안군, 오대식 신임 서울국세청장은 경남 산청군, 권춘기 신임중부지방국세청장은 전북 완주군 태생이다.
이들은 또 모두 행시 21회 출신으로 전군표(행시 20회) 청장의 뒤를 이어 차기 청장 후보군으로 꼽혀온 기수다. 그동안 국세청 안팎에서는 국장급 이상 고위 공무원(총 30명) 가운데 행시 21회가 8명이나 돼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번 인사를 통해 차기 청장 후보가 가시화됨에 따라 앞으로 이들의 업무 역량과 자질 등에 대한 평가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오 신임 서울청장은 국세 행정 전반에 대한 전문성이 뛰어나고, 현 정부 출범과 함께 발족한 ‘국세청 세정혁신추진기획단장’을 맡아 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 신임 중부청장은 지난해 초 신설된 부동산납세관리국 초대 국장으로 일하면서 종합부동산세를 조기에 정착시켰다는 평가다.
역시 21회인 조성규 신임 국세공무원교육원장은 이번에 새 보직을 맡게 됨에 따라 앞으로 있을 인사 태풍에서는 한 발짝 비켜나 있게 됐다.
이번 인사에서는 행시 22회인 허병익 신임 조사국장의 약진도 눈에 띈다. 행시 동기 중 가장 먼저 국세청 내 핵심 요직에 오름에 따라 ‘차세대 주자’로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지게 됐다. 허 국장은 강원 강릉시 출신으로 신일고와 고려대 법대를 나와 납세보호과장, 납세지원국장, 법인납세국장 등을 지냈다.
●前중부청장 퇴임사서 인사 비판 눈길
한편 23일 퇴임한 김호업 전 중부청장은 직원들에게 보낸 ‘고별사’에서 국세청의 인사 관행을 강도 높게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김 전 청장은 ‘청장 후보 빅 3’와 같은 행시 21회 출신이다.
그는 “국세청장이 바뀔 때마다 납득되지 않는 새로운 명분과 기준을 만들어 유능한 간부를 퇴출시킨다면 조직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면서 “나를 음해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조사담당관들이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통보를 받았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 안팎에서는 “김 전 중부청장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차기 청장에 대한 의욕이 지나친 면도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등 해석이 분분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공직39년… “이제 집에 봉사해야죠”
고졸 ‘9급 신화’ 박찬욱 서울지방국세청장 오늘 퇴임
“아직까지 한 번도 아내와 해외여행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집에도 좀 봉사를 하고, 인생의 후반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국세청 ‘9급 신화’의 주인공 박찬욱(58·사진) 서울지방국세청장이 25일 명예퇴직을 한다. 1968년 9급(당시는 5급을) 공채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지 39년 만이다.
경기 용인 출신인 박 서울청장은 정통 고시파가 장악한 국세청 고위직에서 고졸(高卒) 학력에 ‘비고시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요직을 두루 거쳐 눈길을 끌었다. 비결을 묻자 “특별히 애쓴 게 뭐 있나. 그저 열심히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세청 후배 직원들은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것은 일에 대한 성실함과 인간적 겸손함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이 생기면 밤샘을 해서라도 성과를 내놓는 데다 어려운 직원들의 경조사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해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23일에도 서울청장으로는 마지막 일정으로 재직 중 줄곧 지원했던 서울 서대문구 아동복지시설과 용산구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는 따뜻한 면모를 보였다.
박 서울청장은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1990년대 말 모친이 물려준 땅이 개발돼 100억 원대의 자산가로 올라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퇴임 후 몇 달간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며 ‘제 2의 인생’을 설계할 계획이다. 이미 몇몇 회계법인에서 회장으로 와 달라는 제안도 받았지만 당분간 업무에서 손을 뗀 채 해외여행 등을 하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박 서울청장은 “퇴임식 때 꿋꿋한 모습을 보여 주려고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벌써부터 눈물이 나려고 해 걱정이다. 후배들이 국세청을 잘 이끌어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