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6월 미국을 방문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선물로 받은 카우보이 모자를 써 보며 미소 짓고 있다. AP 연합뉴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장례식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 10시(현지 시간) 모스크바 남부 노브이체레무시키 시장. 이곳에서 만난 바짐 아르카디 씨는 ‘초대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손사래부터 쳤다.
“크렘린에 대해 마음대로 얘기하는 자유만 얻었을 뿐”이라는 그의 답변에선 전직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진하게 배어 나왔다.
이곳에서 옐친 전 대통령의 사망을 애도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었다. ‘옐친 때문에 더 못살게 됐다’는 말만 나왔다. 인구의 13%가 아직도 월소득 140달러 미만의 빈민이고 이들 중 상당수가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듯했다.
1992년 초 시장에 도입된 가격 자유화, 1993년부터 본격 시작된 국유재산 사유화 당시 일반 시민은 20배가 넘는 인플레이션, 재산가치 폭락의 후유증을 겪었다. 소비에트 배급제에 익숙했던 이들 중 상당수는 정권이 바뀐 뒤에도 옐친식 충격 요법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고 있었다.
시장을 벗어나 레닌스키 프로스펙트 대로변에 세워진 고급 의류 판매점에 들르자 그를 동정하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게 주인 나탈리야 판필로브나(54·여) 씨는 “옐친 대통령 아니면 죽어 가던 러시아를 구할 인물이 없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중년 여성 고객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옐친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왔기 때문에 경제를 살렸다”고 거들었다.
▽옐친이 씨를 뿌린 개혁 아직도=그가 러시아에 남기고 간 흔적은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러시아가 강력한 대통령중심제로 전환한 것은 1993년 12월. 당시 옐친 대통령은 의회에 남아 있던 공산당과 옛 소련 지지자들의 힘을 빼기 위해 대통령에게 의회해산권과 정부 요직 임명권을 준 새 헌법을 채택했다. 내년 3월에 임기가 끝나는 푸틴 대통령이 의회의 견제를 받지 않는 것도 옐친이 남긴 것이다.
게르만 그레프 러시아 경제개발통상부 장관은 최근 “국영기업인 브네시토르크은행 상장 등을 통해 올해에도 민영화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유재산 사유화도 옐친이 시작한 개혁 프로그램의 중심축이었다.
토지 사유화 정책은 소련 붕괴 후 16년간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현재 러시아 국토의 95%는 국유지다. 모스크바 시내 아파트 대부분은 국유지에 세워져 땅을 둘러싼 소유권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러시아가 추진하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옐친 개혁의 핵심인 개방화 정책의 연장선이다.
러시아에 남아 있는 사회주의적 잔재는 옐친 전 대통령이 개혁 반대파에 밀려 본격적으로 손을 대지 못한 분야다.
지난해 푸틴 정부는 의사 월급을 근로자의 평균임금 2배에 가까운 1000달러 수준으로 올렸으나 러시아인들이 저렴하게 이용하는 의료시설과 서비스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사회주의 시절부터 이어진 무상교육 체제도 근간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나 유능한 과학자와 교사들의 연구센터 및 교육 현장 이탈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월급이 300달러라고 밝힌 대학강사 타티야나 이바노바(여) 씨는 “의료와 교육 분야는 옐친 대통령 시절부터 줄기차게 개혁한다고 말만 늘어놓았으나 정부 예산이 부족해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옐친의 후광으로 푸틴 인기 급상승=푸틴 대통령은 고유가를 바탕으로 옐친 전 대통령의 개혁 정책을 관리한 인물로 꼽힌다.
고유가 덕에 러시아 경제는 2000년부터 연간 6%대의 성장률을 보였으며 국가 채무도 대부분 갚았다. 옐친 대통령 당시 금융 위기에 몰렸던 신생 러시아는 더는 서방 의존형 국가로 머물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이 70%대로 인기가 치솟은 반면, 그에게 자리를 물려준 옐친 전 대통령의 인기도는 사망할 때까지 3%를 넘지 못했다.
정치평론가 이반 사프란추크 씨는 “러시아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안정되면 처음으로 길을 닦은 옐친 대통령 평가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viyonz@donga.com
:옐친에 대한 추모와 찬사
▷“용감한 지도자로서 항상 개방적이고 진실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업적과 과오를 함께 짊어졌던 비극적 운명을 지닌 인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격변의 시기에 조국에 봉사한 역사적 인물”
―부시 미 대통령
▷“동서 화해 촉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러시아를 민주주의의 길로 들어서게 한 사람”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평화 자유 진보에 대한 용기와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보였다”
―클린턴 전 미 대통령
▷“그 아니면 러시아는 계속 공산주의 치하였을 것”
―대처 전 영국 총리
▷“그가 남긴 것은 현재 우리가 가진 자유로운 세계다”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