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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옛도심의 재발견/원동 역전시장 ‘원조 선지국’

입력 | 2007-04-25 06:36:00


하루 장사를 마무리하려는 상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상점들은 철문을 약간씩 내려놓고 철시를 준비한다. 난전 상인들은 한두 무더기 남은 채소나 생선을 들어 보이며 “싸게 줄 테니 떨어 가라”며 길을 막는다.

“하나 말아 주쇼.”

23일 오후 7시경 대전 동구 원동 역전시장 골목. 치열한 삶의 하루가 저물어 가는 가운데 한편의 식당에 손님들이 속속 찾아든다.

주인 홍성순(69) 씨는 매일 보는 단골이어서인지 손님의 주문에 대꾸도 없이 국밥 그릇을 집어 들고 밖에 있는 국솥 쪽으로 나간다. 3분의 1쯤 열린 뚜껑 사이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홍 씨가 국자로 국솥을 이리저리 젓다가 퍼 올리자 구수한 선짓국 냄새가 퍼진다.

역전시장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원조 선지국’의 풍경이다. 홍 씨는 1979년 주변에 식당을 차렸다가 1995년 이리로 옮겼다.

식당은 공사판 주변의 선술집처럼 허름하다. 8평 남짓한 내부에는 찬장과 싱크대, 테이블 2개가 덜렁 놓여 있다.

나 홀로 손님은 양쪽 벽면에 붙어 있는 폭 30cm, 길이 3m가량의 선반을 이용해야 한다.

메뉴는 선지국밥, 선지국수, 돼지머리 국밥, 라면 등 네 가지. 날씨가 추워지면 간과 천엽도 판다.

가격은 놀랍게도 모두 1000원. 곱빼기는 500원이 비싸다.

“처음 가게를 낼 때는 150원인가 받았어. 조금씩 올라 12년 전인가부터 1000원을 받았지. 조금 올리려고 했는데 IMF(외환위기)인가 뭔가가 터져서 그대로 두었지.”

다른 식당에서 3000∼5000원 받는 선짓국을 1000원에 팔 수 있는 것은 식당이 시장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 선지를 제외하고 국밥의 주 재료인 무시래기는 주변 채소 상인들에게 거저 얻는다.

그래서 이 식당은 ‘1000원짜리 선짓국집’으로 더 유명하다. 이 골목의 곤계란 목로주점처럼 시장 상인 누구나 “1000원짜리…”를 물으면 주저 없이 가르쳐 준다.

하루 손님은 150∼200명. 대부분 다른 데서 온 사람들이다. 술을 시키면 약간의 선짓국을 안주로 주기 때문에 500∼1000원으로 소주와 막걸리 잔술을 즐기는 이도 적지 않다.

박인규(60·대전 서구 둔산동) 씨는 “직장은 충남 금산인데 통근 버스가 이 주변으로 지나가 퇴근 때 한잔 하고 집으로 간다”며 “막걸리 한잔에 안주로 선짓국을 먹으면 시장기를 덜 수 있어 집에 가서는 밥 반 공기 정도로 저녁을 때운다”고 말했다.

반찬은 무김치 달랑 하나. 하지만 이 식당은 전국적으로 소문난 집이다. 2003년부터 ‘MBC 화제집중’, ‘VJ특공대’ 등의 TV 프로그램에 13차례나 소개됐기 때문. 이 집의 출입문과 내부에는 TV 화면과 프로그램 제목이 잔뜩 나붙어 있다.

한 손님의 얘기에서 이 같은 인기의 비결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주인은 주문에만 응할 뿐 손님 일에 일절 개의치 않아요.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 하루를 시달리다 이 집에 오면 거스름돈 몇 푼으로 잠시 나만의 세계를 찾을 수 있지요.” 042-284-0170

※ 대전 원도심 지역 중 신도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멋이나 맛, 재미로 소개할 만한 곳이 있으면 제보하기 바랍니다. 이 시리즈는 매주 수 목요일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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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