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그 상사는….” “어머, 정말?” 직장의 인간관계는 오묘하다. 갈등으로 고민하지만 때로는 훈훈한 인간애에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취업포털 커리어에서 입담으로 빠지지 않는 6인방이 모였다. “우리 회사는 분위기 좋아요.” “안 좋은 기억은 전부 예전 직장 얘기예요.” 오늘도 열심히 땀흘리며 살아가는 모든 직장인에게 경배를. 원대연 기자
《“사람의 행복은 90%가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키르케고르)
인간관계는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어릴 땐 걱정하지 않거나,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낙관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속하는 모임이 늘어나면 인간관계만큼 어려운 게 없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특히 까다롭다.
“‘생산적’인 것이야말로 인간관계에서 유일하게 타당한 정의”(피터 드러커)라고 했던가.
확실히 직장생활에서 생산은 중요한 덕목이다.
문제는 인간이 로봇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전혀 사심 없이 일하기란 어렵다.
동료와 클라이언트에게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상사와 부하직원의 인간관계다.
동아일보 위크엔드는 취업포털 ‘커리어’(www.career.co.kr)와 함께 그 미묘한 관계를 들춰 보기로 했다.
13∼18일 직장인 1636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직장인 6명과 ‘전 직장에서’라는 전제를 깔고 심층 인터뷰도 했다.》
직장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상하유형
○ 절반 넘게 갈등으로 퇴직
“꽤 규모가 큰 회사였다. 어느 날 상사가 자기 차의 엔진오일을 갈라고 했다. 꾹 참고 했다. 그런데 세차도 하라는 거다. 그건 도저히 못하겠다고 반발했다. 진짜 그만두고 싶었다.”(정병찬 대리)
직장 내 갈등은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응답한 직장인들은 10명 중 7명(71.8%)꼴로 상사 및 부하직원과의 갈등 때문에 퇴사를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30대(81.8%)가 유독 많았다. 그중 실제로 그만뒀다는 응답도 53.9%나 됐다.
울 때도 많았다. 44.1%가 갈등 탓에 눈물을 흘렸다. 아무래도 20대(37.1%)와 여성(68.4%)의 비율이 높았다.
“모 임원이 당시 유명했던 야한 동영상을 보고 싶다고 했다. 신입이라 안 할 수도 없고 해서, 살짝 내려받다가 팀장에게 들켰다. 문제가 커져서 상부에 보고까지 됐다. 하지만 지시한 임원은 어떤 도움도 안 주더라. 어디다 하소연도 못하고…. 정말 눈물 났다.”(김선일 대리)
잘못된 술버릇은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 억지로 술 권하기(31.2%)는 술자리에서 가장 말리고 싶은 행동. 20대(32.9%) 30대(29.9%) 40대 이상(24.7%) 순으로 나이가 어릴수록 싫어했다. 일장연설(21%)도 기피 대상이다.
성적 농담이나 폭언(16.8%)은 예상대로 여성(30.7%)이 많이 꼽았다. 밤늦도록 붙잡아 두기(11.7%)와 ‘술주정(10.4%)도 말리고 싶은 버릇이다.
○ 요령 피우는 부하직원 밉상 1위
“팀원이 인터넷으로 TV를 보다 들켰다. 그런데 보지 않고 소리만 들었다는 거다. 요령을 피운 것도 못자라 구차한 변명까지 하다니. 많이 실망스러웠다.”(문선영 팀장)
“머피의 법칙도 있다. 하루 종일 일하다 잠깐 봤는데 그때 꼭 걸린다.”(장규희 대리)
상사는 ‘잔머리’를 싫어한다. 요령만 피우는 부하(28.9%)가 밉상 1위로 꼽혔다. ‘예의 없고’(20%) ‘매사에 불평불만’(16.5%)인 부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필요할 때만 친한 척하는 부하(11.1%)도 꼴불견. 40대 이상(16.2%)이 특히 싫어했다. ‘잘난 척하거나’ ‘분위기 파악 못하는 부하’(둘 다 7.9%)도 별로였다.
반대로 부하직원들은 독단적이거나 권위적인 상사(33.3%)와 변덕스러운 상사(20.3%)를 가장 부담스러워했다. 후배의 업무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포장하는 얌체형(14.6%)도 얄미워했다.
“보고서를 올렸는데 임원회의에서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팀장이 수정한 부분만 지적당했는데도 사람들 앞에서 왜 그랬냐고 다그치더라. 칭찬받을 땐 모두 자기 공인 양 굴면서. 인간적으로 배신감마저 들었다.”(정 대리)
○ 보고 자주 하고 술자리 따라가고…애교-웃음도 무기
그러나 미워도 상사인 것을. 요령이라 할지라도 성실한 척하는 수밖에. 업무보고를 수시로 하고(19.7%), 상사 앞에서는 더 일하는 척한다(18.9%). 잦은 업무보고는 나이가 많을수록, 일하는 척은 나이가 어릴수록 많이 쓰는 수법이었다.
웃음이나 애교(16.3%)는 여성(23.4%)에게 최고의 무기. 사적인 대화(15.8%)를 많이 하거나 회식과 술자리 참석(11.1%)도 인간적으로 상사에게 잘 보이는 노하우였다.
상사라고 부하 직원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이 없을까. 칭찬과 사적인 대화(각각 35.4%)가 공동으로 1위를 차지했다. 밥이나 술을 자주 사거나(8.9%) 회식 술자리 조성(7.6%)도 꽤 많이 꼽아 윗사람과 아랫사람간의 미묘한 인식 차를 보였다.
“오후회의는 생각보다 늦어질 때가 종종 있다. 마치고 왔는데 팀원 모두 밥 먹으러 갔더라. 난처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변재명 팀장)
“퇴근하다 팀원 두셋이 술을 마신 적이 있다. 다음 날 팀장이 알고는 자기들끼리 모였다고 서운해했다. 팀장이 되니까 그 심정을 알겠더라. 어디 간다고 메모라도 해 주는 부하가 제일 고맙다.”(문 팀장)
“상사 없이 마셨으면 입단속을 해야지.”(정 대리)
○ 업무를 넘어선 인간적 관계…신뢰와 믿음이 중요
“직속상사가 좀 무능했다. 결국 팀장 직책을 내놓고 후배가 승진했다. 그런데 사표를 못 내더라. 아이는 커 가고 대안이 없으니까…. 처음엔 왜 저러나 싶더니 남의 일 같지 않더라. 나중에 나도, 내 남편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맘이 짠했다.”(양지영 씨)
상사도 인간이다. 부하도 마찬가지. 그래서 갈등도 일어난다. 상당수의 갈등은 업무 외 영역에서도 상대방에게 바라는 게 있어 생기는 거다. 응답자의 40.9%는 ‘업무는 물론 인생 선배나 후배로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여성(30.4%)보다는 남성(49.2%)이 그런 경향이 강했다. 나이가 많을수록 기대감이 컸다.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 싶다’(33.5%)는 의견도 많았다.
직장생활에서 인간적으로 믿고 챙기는 관계로 발전한 상사나 후배는 2, 3명(47.5%)이 가장 많았다. 6명 이상도 10.6%나 됐지만 ‘단 1명도 없다’(11.2%)는 대답도 꽤 많았다.
“업무상 과실로 문제가 법적으로까지 커진 적이 있다. 클라이언트는 내 잘못으로만 돌렸다. 갑을 관계라 반박도 힘들었다. 그때 팀장이 모두 자기 책임이라며 커버해 줬다. 평생 못 잊을 일이다. 직장은 달라졌지만 그 선배와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낸다.”(장 대리)
부하는 책임감을 보여 주는 상사를 따른다. ‘부하가 경력을 쌓도록 도와줄 때’(30%) 가장 일할 맛이 난다. 잘 챙겨 주고(18.3%) 리더십이 강하면서도(11.9%) 정이 많은(10.7%) 상사는 부하직원들의 존경을 받는다.
상사는 근면 성실(28.9%)한 부하직원을 좋아한다. 예의 바르고(22.8%) 뭐든지 배우려는 자세(17.5%)도 중요하다.
“폼 나는 일만 찾는 부하직원은 안타깝다. 뭐든지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자신의 일하는 스타일과 목표를 상사와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감대와 이해는 적극적인 대화와 자세에서 비롯된다.”(변 팀장)
“진심은 통한다고 믿는다. 그게 깨지면 실망하고 등을 돌린다. 중요한 건 신뢰와 믿음이다. 그건 모든 인간관계가 마찬가지 아닌가.”(정 대리)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