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창립 20주년과 파리컬렉션 진출 10회째를 맞은 솔리드 옴므의 디자이너 우영미 씨. 원대연 기자
2002년부터 10회째 파리컬렉션 참가 ‘솔리드 옴므’ 디자이너 우영미씨
“파리컬렉션이 ‘구조조정’ 한다는 말에 얼마나 떨었는데요. 하지만 당당히 좋은 시간대를 따내 뿌듯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 중인 남성복 ‘솔리드 옴므’의 디자이너 우영미(48) 씨는 올 1월 가을겨울 파리컬렉션을 앞두고 바짝 긴장했다. 남성복 컬렉션 일정이 하루 줄어들면서 8∼10명의 디자이너가 퇴출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 크리스찬 디올 옴므, 폴 스미스 등 쟁쟁한 브랜드 틈에서 아직 걸음마 단계의 동양 디자이너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러나 프랑스패션협회 평가위원회는 ‘무슨 걱정이냐’는 반응이었다. 파리의 중산층 거주지역인 마레 지구에 단독매장을 내고, 명품을 주로 취급하는 봉 마르셰 백화점에서 판매되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
결국 우 씨는 황금 시간대인 오후 6시 30분을 배정받고 ‘유니폼’을 주제로 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파리 패션계가 ‘남성복을 만드는 동양 여자’인 우 씨의 실력을 인정한 것. 일간지 르피가로는 그를 올해 주목받는 4대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우 씨는 “파리는 보이지 않는 눈이 많은 곳”이라며 “그들의 냉정한 평가를 의식하며 이 악물고 노력한 게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그의 파리컬렉션 진출은 치밀한 준비와 실험 덕택에 가능했다. 먼저 1996년 파리남성복 전시회에 나가 유럽인의 반응을 살폈다. 영국 벨기에 등 서유럽의 평가가 괜찮았다. 가능성을 확인한 솔리드 옴므는 2002년부터 꾸준히 파리컬렉션에 참가해 올해 10회째를 맞았다.
우 씨에게 2007년은 특별하다. 올 하반기에는 미국에 쇼룸을 열고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최근 열린 서울모터쇼에서는 독일 자동차 아우디와 함께 ‘레이싱 보이’의 옷을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올해는 솔리드 옴므가 스무 살이 되는 해. 198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골목에 차린 자그마한 옷가게가 국내 백화점 13곳에 매장을 둘 정도로 커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20년 동안 ‘남성 해방(?)’의 역사를 생생하게 지켜본 것 같아요. 꾸미는 남자를 비웃던 시대에서 패션을 무기로 삼는 요즘 젊은 층의 등장까지. 남성 패션의 해방사죠.”
당시 29세 젊은 디자이너의 옷가게는 이문세, 이승철, 신승훈 등 남자 가수들의 아지트였다. 모던하고 세련된 남성복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강동원 김민준 등이 솔리드 옴므 마니아로 불린다. 20대와 40대가 함께 입는 브랜드로 성장한 셈이다.
우 씨는 “요즘 남성들의 변신은 놀랍지만 아직도 패션을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무기’로만 생각한다”면서 “옷 입기 자체를 즐기고 자꾸 입어 보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