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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권순택]딱한 경찰

입력 | 2007-04-27 03:02:00


미국 경찰 과학수사팀의 활동을 소재로 한 CBS TV의 시리즈물 ‘CSI 과학수사대’는 미국 드라마 열풍의 진원지다. 지문감식가, 법의학자, 부검의, 증거추적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수사대가 첨단 장비와 고도의 기법을 동원해 범죄를 파헤쳐 가는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에미상을 세 차례나 받았을 만큼 작품성도 높다. 이런 드라마를 통해 첨단 과학수사에 익숙해진 국내 시청자들은 우리 경찰도 그만큼 해 주기를 바란다.

▷제주 초등학생 양지승 양 유괴 피살사건 수사는 그런 기대를 무참히 저버렸다. 지승 양은 집에서 120m 떨어진 과수원 내 가건물에서 유괴범에게 성추행당한 후 살해됐고 시신은 현장에 숨겨졌다. 3년 동안 이 가건물에서 거주한 범인은 어린이 납치 미수를 포함해 전과 23범이었다. 경찰은 연인원 3만4000여 명을 동원해 주변을 수색했다지만 40일 동안 시신도 못 찾고 헤맸다. 동종(同種) 전과자를 대상으로 한 탐문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을 만큼 기본이 안 된 수사를 했기 때문이다.

▷재벌인 H그룹 K 회장이 경호원을 동원해 아들을 때린 사람들을 보복 폭행했다는 의혹 사건도 마찬가지다. 경찰은 지난달 9일 밤 서울 시내의 한 술집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지만 쌍방이 합의했다는 이유로 혐의자들을 입건하지 않았다. 초동수사부터 제대로 안 된 것이다. 경찰은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자 뒤늦게 관련자들에게 출석 요구서를 보냈다. 전형적인 뒷북치기다. 경찰 총수 출신의 사건 무마 개입설까지 나오는 걸 보면 경찰이 K 회장을 의식해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두 사건은 경찰의 기강 해이와 무능이란 측면에서 공통점이 많다. 특히 지승 양 사건은 인천 초등학생 박모 군 유괴 피살 사건에 국민이 놀라고 있을 때 발생했다. 그런데도 부실 수사를 했다니 경찰이 얼마나 나사가 풀려 있는지 알 만하다. 잇따른 유괴사건으로 부모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경찰이 수사권 독립만 외친다면 얼마나 지지를 받겠는가.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