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포도당은 지구상에 가장 많은 유기화합물이다. 식물이 탄소동화작용으로 만들어 놓은 자연의 선물이다. 쌀에 가장 많이 들어 있다. 사람과 동물은 포도당 없이 한순간도 살 수 없다. 생물의 먹이이자 생명의 에너지원이다. 포도당 사슬로 이뤄진 셀룰로오스 섬유는 옷과 종이를 만들고, 섬유소 덩어리인 목재는 집과 가구를 제공한다. 의식주에서 포도당이 한시도 떠날 날이 없다. 최근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포도당을 가공해 바이오 소재나 바이오 에너지, 의약품을 생산하는 시대가 열렸다. 국제사회는 포도당 확보 경쟁을 시작했고, 포도당은 제2의 석유가 됐다.
우리 몸은 포도당을 이용해 생명엔진을 가동하지만 공급 조절이 잘 안 되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두뇌는 포도당만 이용하는데 포도당이 공급되지 않으면 두뇌 활동이 정지되고 저혈당으로 경련을 일으킨다. 심하면 생명까지 위협한다.
사람 몸에는 100조 개의 세포가 있는데, 포도당을 취해 대사물과 생체분자를 합성함으로써 생체 조직과 기능을 유지한다. 포도당이 너무 많이 유입되면 비만이 되고 세포 내부에 전달되지 못해 혈당이 높아지면 당뇨병으로 이어진다. 또 포도당은 생체분자와 견고히 결합하는 성질이 있다. 혈관에 포도당이 많이 부착되면 유연성이 떨어지고 순환계 질환으로 발전해 생명을 위협한다.
우리 사회도 포도당에 예민하다. 쌀의 수요와 공급에서 가격 불균형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쌀과 곡물의 공급이 넘치면 농민이 시름에 빠지고, 모자라면 사회문제가 된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돼 저렴한 곡류가 넘치면 국내 농산물이 천덕꾸러기가 될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돌파구는 포도당의 가공 능력을 고도화하는 길이다.
최근 국제시장에서는 포도당이 요동친다. 국제 원유 가격이 배럴당 60달러를 넘고 포도당에서 대체연료인 알코올을 생산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최근까지 소극적이던 미국은 브라질과 ‘바이오에너지포럼’을 결성했다. 옥수수의 국제가격이 두 배로 치솟고 미국에서는 유휴농경지를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국제시장에서 쌀과 같은 곡물의 품귀현상이 발생할지 모른다. 한국은 식량자급도가 27%밖에 되지 않아 걱정인데 한편에서는 쌀이 남아돌아 처치 곤란이다. 포도당과 관련된 국내외 기류가 폭풍으로 변할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실험실에서 대장균을 잘 관찰하면 해결책이 보인다. 실험실 대장균은 포도당과 약간의 무기염류가 혼합된 배양액에서 잘 자란다. 30분 만에 또 다른 대장균을 만들어 증식할 정도다. 바로 이 점이다. 대장균과 같은 산업미생물은 포도당을 이용해 정교한 생체분자를 손쉽게 만든다.
현재 생명공학은 이 미생물의 생산 능력을 꺼내 산업적으로 활용한다. 이미 바이오 에너지뿐 아니라 생분해성 고분자까지 생산하며, 전분을 효소로 가공해 기능성 식품 소재를 만든다. 포도당을 이용하는 고도의 발효기술은 부가가치가 높은 의약 소재는 물론 인슐린이나 성장호르몬과 같은 치료용 단백질까지 생산한다. 포도당과 생명공학의 만남을 통해 21세기 바이오산업을 열고, 포도당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시점이다.
새만금 같은 곳에 대규모 첨단 바이오 소재 단지를 설립하면 어떨까. 포도당을 생산하고 가공하기 위한 전초기지가 필요하다. 국내에는 유전체 연구사업을 통한 방대한 유전정보와 이를 이용한 세계적 수준의 발효산업, 그리고 효소공학기술이 있다. 포도당을 가공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이다. 모든 경제작물이나 약제식물을 집중적으로 경작하고, 첨단 바이오 소재나 제약제제 생산을 곁들이면 21세기 바이오산업의 주도권을 잡고, FTA 파고를 쉽게 넘을 것으로 본다.
이대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 연구원·한국당과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