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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만우]공정위의 기업 깎아내리기

입력 | 2007-04-30 03:01:00


공정거래위원회가 D램 제조업체의 가격 담합 사건에 대해 증거 부족으로 심의를 종결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뿐만 아니라 미국의 마이크론과 독일의 인피니온이 포함된 조사에 대해 당초부터 무리한 끼워 맞추기였다는 불만과 대기업 봐주기라는 비난이 동시에 나왔다. 이들 업체는 1999년부터 2002년 사이에 미국 컴퓨터 제조업체에 공급하는 D램 공급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적발됐다. 공정위는 한국에서도 담합했는지 그리고 미국에서의 담합 가격을 적용했는지에 대해 조사했다.

조사권 남용… 상당 부분 무혐의

세계 최대 무역적자국인 미국은 수입 원자재와 상품을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사들이기 위해 외국계 기업에 대한 반독점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회사의 절반이 외국계 기업이다. 미국 내에서 이뤄진 다국적 공모의 가담자 중에서 미국 기업인 마이크론은 담합 내용을 자수했다고 처벌을 면제받고 외국계 기업에 대해서만 중형이 선고된 일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 이에 대해 공정위원장은 “대기업이 외국에서 적발되면 관련 직원이 감옥에 가도 별말이 없으면서 한국에서는 과징금 내는 것 갖고도 불만이 많다”고 비아냥거린다.

업체의 가격 인상이 비슷한 시기에 이뤄지면 담합으로 추정해 공정위가 조사를 개시한다. 그러나 조사 결과 상당 부분은 무혐의 처리되며 공정위가 제재한 사항에 대해서도 행정소송에서의 승소율은 60%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대법원은 KT가 2001년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7년간의 소송 결과 KT는 이자 54억 원을 포함해 환급금 361억 원을 돌려받게 됐으나 기업 이미지 실추는 보상받을 길이 없다. 공정위원장은 담합은 살인과 같은 중대한 범죄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공정위원장은 그것이 살인인지 여부를 좀 더 신중하게 살펴서 기업을 부당하게 깎아내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공정위의 기업 깎아내리기는 대기업 소유구조 정책에서 더욱 심각하게 드러난다. 순환출자를 통해 낮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대주주의 횡포를 막겠다면서 출자총액제한과 의결권제한 등의 규제를 남발한다. 최근에는 지주회사를 투명성의 대명사로 치켜세우면서 상장회사의 경우에는 지분 20% 이상이면 지주회사가 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지주회사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대주주의 적은 지분이 도마에 올랐던 SK㈜가 인적분할 방식을 통해 지주회사인 SK홀딩스와 사업자회사인 SK에너지화학으로 나눌 계획을 밝혔다. 회사 분할을 염두에 두고 자사주를 17%나 취득했기 때문에 이를 SK홀딩스가 넘겨받고 배정받은 지주회사와 사업자회사 주식을 대주주와 맞교환해 2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는 체제를 갖출 것으로 보인다. SK㈜가 보유한 SK텔레콤 주식 22% 등도 지주회사인 SK홀딩스가 인수하게 된다. 공정위와 일부 시민단체는 지주회사 전환을 극찬하면서 삼성과 현대자동차 그룹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압박한다.

경영논리 무시 지주회사 전환 압박

자회사는 사업 활동을 영위해 이익을 얻어 지주회사에 배당하고 지주회사가 다른 회사를 설립 또는 인수해 성장하는 것이 지주회사 제도의 근간이다. 20% 정도의 낮은 지분을 보유한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다른 주주에게 이익의 80%를 배당하고 남은 극히 일부분만 성장 재원으로 쓸 수 있다. 소유구조를 한 단계 늘려 경영권 방어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투자를 통한 성장에는 치명적 장애가 되는 소규모 지분에 의한 지주회사는 대기업을 깎아내리고 국민 경제의 성장 동력을 위축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