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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김승연 회장, 경찰, 청와대 3非論

입력 | 2007-05-02 03:00:00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재벌, 경찰, 권력의 부적절한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 사건의 추이에 따라 반(反)기업정서가 확산되고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더 깊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다가 청와대의 엄정수사 지시를 받고서야 강행군 수사로 돌아선 경찰은 재벌과 권력 양쪽에 약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국민에게 거듭 확인시켰다.

김 회장 부자는 폭력을 직접 휘둘렀다는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폭행당한 상황을 일관되게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어제 경찰이 김 회장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김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도 다수 피해자와 목격자들의 한결같은 진술 때문일 것이다.

김 회장은 소환을 두 차례 거부한 끝에 경찰조사에 응했다. 한화그룹 법무실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는 김 회장은 법정에서 다툴 여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해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때로 묵비권을 행사하며 발뺌으로 일관하는 김 회장의 태도를 바라보면서 거부감을 드러내는 국민이 적지 않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초동 수사를 소홀히 했던 경찰은 남대문경찰서, 서울지방경찰청, 경찰청이 위아래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이택순 경찰청장은 “언론 보도 이전에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보고 관행이나 김 회장의 비중으로 볼 때 믿기 어려울뿐더러 중요 사건을 보고받지 못한 것이 자랑거리가 되는지 모르겠다. 보고를 안 받았으면 총괄적인 지휘책임도 면책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서울경찰청은 광역수사대의 구체적 첩보 보고가 있었는데도 “첩보가 부실했다”고 변명했다. 치안의 기둥인 경찰 전체가 국민에게 ‘졸(卒)’로 보이기 딱 알맞은 처신들이다.

청와대가 지난달 28일과 30일 이 사건에 대해 거듭 이례적 관심을 표명한 것도 부적절하다. 수사가 초기에 미온적이라는 의혹을 샀기 때문에 엄정수사를 지시하는 일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강력수사를 지시하고 거듭 관심을 보이면 단순 형사사건이 정치사건으로 변질되고 수사가 왜곡되는 경우를 우리는 적지 않게 경험했다. 시중에서는 김 회장과 청와대 사이에 무슨 곡절이 있는 것 아니냐는 루머마저 떠돈다.

청와대의 지나친 관심 표명은 경찰 수사의 무리를 조장할 수도 있다. 영장 처리와 재판 과정에서 검찰과 법원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과연 청와대가 법무수석실을 통해 이 사건을 어느 시점에 보고받았는지도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재벌 회장이든 서민이든 인권은 똑같이 중요하고 저지른 죄만큼 대가를 치르면 된다. 이 사건에 임하는 김 회장이나 경찰, 청와대 모두가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