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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美야구 루 게릭 연속출전기록 마감

입력 | 2007-05-02 03:00:00


“감독님, 오늘은 절 빼주세요.”

‘철마(鐵馬)’는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몸은 이제 더는 강철 같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강철처럼 뻣뻣이 굳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1939년 5월 2일 미국 디트로이트 브릭스 스타디움.

미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의 ‘부동의 1루수’ 루 게릭은 경기를 앞두고 조 매카시 감독에게 이렇게 말했다. 감독은 고심 끝에 “뛰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루 게릭이 라인업에서 빠졌다”는 장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벤치에 앉아 눈물을 글썽이던 그를 관중은 기립 박수로 위로했다. 그날 게릭은 끝내 그라운드에 나타나지 않았다. 연속 출장 기록이 2130경기로 마감되는 순간이었다.

1925년 6월 후보 선수였던 게릭은 슬럼프에 빠진 1루수를 대신해 처음 주전으로 나섰다. 물론 이날의 경기가 14년간 이어질 대기록의 서막이 될 줄은 당시 아무도 몰랐다.

그 후 게릭은 독감에 걸려도, 다리에 쥐가 나도, 손가락이 부러져도 경기에 나왔다. 사람들은 이 강철 체력에 빗대 그에게 ‘철마(Iron Horse)’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통산 기록은 타율 0.340, 493홈런, 1995타점. 게릭은 팀 동료였던 베이브 루스와 황금의 클린업 트리오(중심타선)를 구성하며 양키스를 메이저리그 사상 최강팀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말년이 되면서 그의 운동능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근위축성측색경화증. 근육이 뻣뻣해지면서 수년 안에 사망하는 불치병이었다. 게릭은 지난날의 모든 영광과 신화를 뒤로 하고 죽음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1939년 7월 양키스 홈구장에서 열린 은퇴식. 게릭의 고별사는 장내를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팬 여러분. 여러분은 최근 저의 불운을 목도했지만 저는 제가 지구상에서 가장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10여 년 동안 야구장에서 제가 받은 것은 오직 여러분들의 친절과 격려뿐이었습니다. 이 선수들을 보세요. 전 이렇게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뛰었습니다. 저를 가르치고 키워 준 부모가 있었고, 항상 힘과 용기를 준 아내가 있었습니다. 잠시 불운을 겪었을지 몰라도 전 행운아입니다.”

게릭은 1941년 눈을 감았다. 훗날 사람들은 이 희귀병을 ‘루 게릭병’이라 이름 지었다. 그의 아내 엘리너 게릭은 재혼하지 않고 여생을 루 게릭병 연구를 지원하는 데 바쳤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