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지난해 이맘때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에 4전 전패한 뒤 서울 강남의 한 호텔 바에서 밤늦도록 통음하며 속을 달랬다. 폭탄주를 20잔 가까이 들이킨 그는 밤 12시도 지난 시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선수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가 봐야겠다.”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다른 장소에서 따로 회식을 하던 모비스 선수들을 떠올리며 떠난 것. 유 감독은 선수들을 일일이 격려해 주며 다음 시즌을 기약했다.
그로부터 딱 1년이 흘러 유 감독은 챔피언결정 최종 7차전에서 통합 챔피언에 올라 헹가래를 받고 눈물을 흘렸다. 1년 전 수모를 당했을 때와 비교하면 모비스는 센터 버지스가 새로 가세했을 뿐이었지만 항상 선수들과 호흡한 유 감독의 지도력 속에 더욱 탄탄한 전력을 갖췄다.
유 감독은 지략가로 불린다. 모비스의 패턴은 30가지에 이르러 10개 구단 중 전술이 가장 변화무쌍하다. 패턴의 이름도 숫자를 비롯해 맥도날드, 버거킹 같은 패스트푸드 이름에 위스키, 코크 등 음료에 이르기까지 친숙하게 붙여 선수들이 기억하기 쉽게 만들었다. 이런 전술을 유 감독은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에 여러 차례 갈아 치웠다.
KTF와의 챔프전 7차전은 유 감독 작전의 백미였다. 마지막 경기여서 선뜻 변화를 주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수비 매치업을 바꿔 이병석이 KTF 신기성을 맡게 하고 버지스가 맥기의 마크맨으로 나서 경기 초반 주도권을 장악했고 이창수의 출전시간을 늘려 수비를 강화했다. 마지막으로 아껴 둔 카드로 결국 승리를 확정지은 것이다.
부인과 아들, 딸을 모두 미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 유 감독은 당뇨병으로 약을 먹어야 하고 정기적으로 안압도 재야 한다. 최근에는 불면증에 시달려 점심 식사 후 잠시 눈을 붙여야 했다.
세상을 얻은 듯한 기쁨을 누렸지만 유 감독은 다음 시즌 구상에 들어갔다. 과감한 세대교체로 새로운 팀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그의 새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