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 장병 유가족 초청 오찬에서 동티모르에서 숨진 김정중 병장의 형 김하중 씨의 인사말을 노무현 대통령이 받아 적고 있는 동안 김 병장의 어머니 장홍여 씨가 울고 있다. 김경제 기자
“미국은 6·25전쟁 전사자들 시신을 돈 들여 찾기까지 하는데 (국방부는) 시신을 찾지는 못하더라도 이렇다 저렇다 말씀은 해 주셔야 하는 게 아닙니까.”
2일 낮 군 장병 유가족 초청 오찬이 열린 청와대 본관 충무실. 노무현 대통령이 “너무 엄숙해서 말을 못 하겠다”며 간단히 인사말을 끝내자 2003년 3월 동티모르 파병 중 실종된 김정중 병장의 형 김하중 씨가 그동안 쌓인 울분을 토로했다.
참석자 대표 중 두 번째로 마이크를 잡은 김 씨는 “대통령 내외분께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고 운을 뗀 뒤 “몇 년 전 동티모르에서 실종된 동생의 시신을 아직도 못 찾고 있다. 시신을 찾고 있는 건지, 조치가 있는 건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그는 “부모님은 명절만 되면 눈물로 밤을 지새우신다”며 “동티모르에 파병됐던 상록수 부대가 없어지면서 내년부터 추모행사도 없다고 한다. 1년에 한 번 그런 모임도 못 하는 게 서운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자리에서 그냥 듣고만 흘려 버리는 내용이 아니고 꼭 답변해 달라. 동생만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호소했다.
김 씨가 “동생의 시신을 아직 찾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모친 장홍여 씨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 옆에 앉은 송영무 해군참모총장이 일어나 장 씨의 눈물을 닦아 주며 위로했다.
노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김 씨의 발언을 꼼꼼히 메모했다. 배석한 김장수 국방부 장관도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분위기가 숙연해지면서 다른 유가족들도 흐느끼기 시작해 오찬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2002년 6월 서해교전 때 전사한 윤영하 소령의 부친 윤두호 씨는 “2002년에는 국군장병 여러분과 애국시민들이 많이 성원해 주셨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윤 씨는 참석자 대표로 김 씨에 앞서 제일 먼저 발언했다.
또 올 2월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테러로 숨진 윤장호 하사의 부친 윤희철 씨는 “유가족들이 하나의 밀알로서 하나 되는 대한민국과 세계 평화에 헛되지 않도록 대통령이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참석한 유가족들이 겪는 슬픔과 고통을 위로한 뒤 “국가보훈제도가 부족함이 없는지 살펴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유가족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찬엔 서해교전 전사자의 부모 10명, 동티모르 상록수부대 순직자의 유가족 10명,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윤 하사의 부모 등 22명이 참석했다.
노 대통령이 순직 장병의 유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한 것은 2003년 4월 동티모르 파병 중 순직한 장병 유가족들을 초청한 이후 두 번째다.
노 대통령은 2003년 6월 서해교전 1주기를 앞두고 경기 평택시의 해군 2함대 사령부를 찾아 서해교전 전적비에 헌화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서해교전 유가족이 청와대에 초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