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장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승자와 패자 모두 말이 없었다. 강물 같은 침묵이 흘렀다. 입회인 김인 9단도 기록석 옆에 선 채 묵묵히 기보를 훑어보고 있었다. 이 분위기에 압도되어 들이닥친 기자들이 선뜻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지 못했다. 2007년 3월 16일 금요일 오후 5시 38분 한국기원 4층 특별대국실. 새 국수가 탄생하는 순간은 이처럼 숙연했다.
한동안 말없는 손가락 복기가 이어졌다. 침묵은 종일 기사실에서 이 바둑을 검토했던 최명훈 9단이 입을 열면서 비로소 깨졌다. 패착은 역시 흑 77이었다. 참고도 흑 1의 사두(蛇頭)가 요처였다. 백 2로 나오면 흑 3으로 두 점 머리를 두들기는 수가 준엄하다. 도전자는 백 4에 붙여 버틸 생각이었다고 하는데 흑이 5로 단점을 방비할 때 백 A, 흑 B, 백 C로 패를 내는 수단이 있어 복잡한 싸움이 예상된다.
백 78을 당하는 순간 승부가 결정됐다. 이 수로 백의 중앙이 매우 두터워졌고 결국 이 두터움의 팔진도에서 국수는 헤어나지 못했다. 3대 윤기현 국수 이후 35년 만에 ‘윤 국수’가 다시 탄생했다. 19세에 이창호 9단을 이기고 오른 자리이기에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183…15, 187…180, 200…135, 204…27, 220…210)
해설=김승준 9단·글=정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