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어디에 떠있는가’에서 최고의 순간은 주인공 강충남(기사타니 고로)의 엄마(에자와 모에코)가 자신의 술집에서 일하는 필리핀 접대부들에게 일장 훈시를 쏟아내는 장면이다.
조센진이란 차별에 평생 한을 품은 그녀지만 “이래서 동남아시아 여자는 믿을 수가 없다.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대만, 특히 중국인을 가장 신용할 수 없다”는 말을 서슴없이 펼친다. 이를 제멋대로 통역하던 필리핀 출신 새끼마담 코니(루비 모레노)가 참다못해 “조선은 동남아시아가 아니냐”고 항의하자 엄마는 “조선은 그냥 동아시아”라고 얼버무린다.
이 장면이야말로 14년 전 일본에서 개봉한 이 영화가 지금 한국에서 생명력을 지닌 이유를 보여 준다. 툭하면 길을 잃고 공중전화부스에서 “지금 제가 어디에 있을까요”라고 외쳐대는 자위대 출신의 택시운전사는 민족통일만 이루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믿어오다 길을 잃은 한국인의 초상이기도 하다.
기를 쓰고 일본의 차별정책에 항의해 왔던 한국인들에게 이 영화는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너나 잘하세요.”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