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과거의 역사를 만나게 되는 것은 답사를 통해서다. 한발 한발 내디뎌 온몸으로 답사를 하다보면 어느새 사료 안에서 접하던 인물들과 호흡을 같이 하게 되는 순간도 느껴지며 그들이 살았던 환경과 공간을 통해서 추체험을 하게 된다.》
대륙 호령하던 고구려의 숨결을 찾아
이 책은 서길수 교수가 11차에 걸쳐 고구려의 첫 번째 도읍지인 홀본(忽本·중국 랴오닝 성 환런) 지역과 두 번째 도읍지인 국내(國內·중국 지린 성 지안) 지역에 산재한 고구려 유적답사 기록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다녔던 두 곳의 도읍지를 중심으로 고구려 역사 유적 답사기를 시작한다.
첫 도읍지인 홀본은 고구려 당시의 이름으로 졸본(卒本)이라고도 불렸던 곳이다. 홀본 지역의 답사에서 제일 관심이 가는 곳은 오녀산성. 이곳은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을 도도하게 내려다보면서 웅위를 자랑하는 산성이다. 오녀산성을 멀리서 바라본 사람들은 우선 웅혼함에 압도당하는데 그 위용은 아름답기조차 하다.
오녀산성 안에 남아 있는 고구려 당시의 유적 가운데 천지(天池)라고 불리는 못과 당시 쓰이던 연자방아 밑돌, 환런 시내에 있는 평지성인 하고성자를 둘러 본 저자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유적인 상고성자 무덤 군, 미창구 무덤과 환런 주변의 고검지 산성 등도 안내한다. 이들 산성은 환런 지역의 방어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산성이었다.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지인 국내 지역은 400여 년 동안 도읍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도시 전체가 유적에 뒤덮여 있다. 우선 장군총과 태왕릉, 무용총, 각저총, 오회분, 삼실총 등의 고구려 고분을 꼽을 수 있으며 광개토대왕비도 빼놓을 수 없다.
일제가 만든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報)’에 실렸던 광개토대왕비 사진을 이 책에 실었는데, 민가 옆에 우뚝 서 있던 비의 원래 모습을 잘 알아볼 수 있다. 이 사진을 통해서 414년에 비석이 세워진 후 1400여 년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만주 벌판에서 온갖 세월을 견뎌 낸 ‘고구려’를 생각하게 한다. 광개토대왕비는 1920년대부터 비각을 세워 보호를 받고 있으나 어쩐지 갇혀버린 듯 답답하다.
이 책의 첫 번째 특징은 답사를 하기 위한 중요한 정보인 지도를 친절하게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이야 위성사진이나 인터넷의 발달로 중국에 대한 정보가 흘러넘치지만 저자의 이러한 배려는 이 지역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저자가 답사를 다니면서 꼼꼼하게 한 기록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볼거리는 많은 사진과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유적에 관한 사진뿐 아니라 저자가 구입한 자료 사진, 유적의 평면도 등을 통해 생생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환런이나 지안 시의 고구려 유적뿐만 아니라 저자가 곳곳의 유적지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내용을 함께 기록한 점도 이 책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그들과의 에피소드는 과거의 흔적인 역사 유적과 잘 어우러진다. 그런 점에 차라리 이 책은 고구려 옛 도읍지의 여행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사진이나 정황 설명 등은 오늘날에 또 다른 사료로 재탄생한다. 급변하게 변하고 있는 중국의 발전 상황에 비추어 더욱 그러하다.
금경숙 동북아역사재단 전략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