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텍스 직원들이 이 기업의 주력 상품인 가격표시기를 조립하고 있다. 모텍스 가격표시기는 지금까지 모두 1000만 대 정도가 팔렸으며 세계 시장점유율은 25%에 이른다. 부천=전영한 기자
모텍스가 새로운 사업 영역에 진출하기 위해 개발한 스마트라벨기계.
《“아직도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가격표시기 내부가 펼쳐져요.”
장상빈(64) 모텍스 회장은 가격표시기로 연방 가격표를 찍어내면서 말했다.
가격표시기(라벨러)는 플라스틱 재질의 제품으로 가격표를 붙이고 싶은 곳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면
가격표가 부착되는 기계.
어느 슈퍼마켓에서나 하나쯤은 볼 수 있는 물건이다.
1980년대 초 장 회장은 남들이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가격표시기 설계를 시작했다.
하지만 경영학과 출신에게 제품 설계가 쉬울 리가 없었다.
“한 1만 번 정도 ‘나는 가격표시기를 만들 수 있다’고 읊조린 것 같아요. 그러니 만들어지더군요.”
1983년 7월 장 회장은 여러 번의 실패 끝에 결국 제품 생산에 성공했다.
독일과 미국, 일본 등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이자 국내 최초였다.》
1980년대 당시 국내에 있는 가격표시기는 100%가 일본 제품이었다. 같은 품질에 절반 가격의 모텍스 제품은 일본 제품을 하나 둘씩 퇴출시켰다.
일본 제품은 110개 정도의 부품이 들어가는 반면 모텍스 제품의 부품은 85개. 제품이 단순해서 고장률이 낮다.
지금 국내의 가격표시기는 대부분 모텍스 제품이다.
○ 세계 시장점유율 25%
모텍스의 가격표시기는 동남아시아 중동 미주 유럽 등 80여 개 나라에 수출되고 있다.
최근 들어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들도 모텍스 제품을 쓰기 시작했다.
세계 시장점유율은 25%로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산업자원부가 선정한 세계 일류 상품 중 하나다. 기술표준원이 주는 우수 품질 마크인 EM마크도 받았다.
모텍스는 초기 개발 이후에도 계속 가격표시 숫자를 쉽게 바꿀 수 있고 더욱 선명하게 표시하게 하는 기술들을 개발했다.
현재 11개 모델 29종의 가격표시기를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한 1000만 대는 판 것 같습니다. 잘 나갈 때는 한 달에 10만 대씩 나갔으니까….”
20년이 넘게 연평균 700만 달러(약 66억5000만 원)를 가격표시기로만 벌어들인 셈이다. 지난해 전체 매출액은 150억 원이었다.
장 회장은 “그동안 국내 다른 회사 3곳에서 가격표시기 시장 진입을 시도했으나 모두 모텍스의 기술력에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접었다”고 말했다.
모텍스는 자체 연구소를 운영하며 지금도 매출액의 10%는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다.
○ “2년 동안 매출 없어도 먹고살아”
장 회장은 1975년 동생 장창빈(60) 사장과 함께 모텍스를 만들었다. 당시 회사 이름은 ‘영빈라이트상사’. 형은 제품 개발을, 동생은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장 사장은 “형님과는 30년이 넘게 사업을 함께해 오면서 한 번도 다투지 않았을 정도로 사이가 좋다”고 말했다.
가격표시기가 대표 상품이지만 전자저울, 문서 세단기, 스티커 및 라벨도 만들고 있다. 대부분 제품의 설계 과정에는 장 회장이 참여했다.
처음 만든 상품은 1976년부터 생산한 테이프 타자기. 역시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4번째로 만든 제품이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미국 기업의 사무실에 가면 사무용품 1호로 보관하고 있는 곳이 많다고 이 회사 이의화 개발부장이 알려 준다.
모텍스의 또 다른 자랑 중 하나는 생산 기계를 대부분 자체 제작한다는 것이다.
공장 직원들은 “이 기계들이 모두 우리가 만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많은 기업들이 그러하듯이 일본 기계를 사다가 했으면 지금의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장 회장은 설명했다.
베스트셀러 가격표시기의 안정된 매출로 모텍스는 운영자금 20억∼30억 원을 가지고 있다. 직원들 퇴직금 다 주고 외상 다 갚아도 남는다. 부채는 없다.
2년 동안 매출이 전혀 없어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라는 것.
주식시장 상장은 하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 ‘인간 존중’의 문화
“너는 어째 불량 하나 없냐?”
공장에서 기자에게 라벨 종이가 불에 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불량품을 찾던 장 회장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일하던 직원의 어깨를 툭 쳤다.
직원이 수줍게 웃는다.
장 회장은 매일 오전 9시∼9시 반 공장을 돌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단순한 인사가 아니다. 장 회장은 직원들의 사적인 일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모텍스 직원들은 “우리 회사는 노사가 서로를 인간적으로 존중해 주는 것이 강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모텍스는 직원의 약 60%가 평균 근속기간 7년 이상일 정도로 이직률이 낮으며 30년 무분규와 무재해를 달성했다.
특히 손이 많이 가는 가격표시기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들은 대부분이 5년 이상 모텍스에서 일하고 있다.
이 회사 장병기 경영지원부장은 “1996년 병역특례업체로 지정된 이후에는 많은 병역특례직원들이 병역특례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천=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中 추격 잠재울 ‘비장의 신제품’
전자태그 라벨기계 개발 끝내… 1대에 10억원 호가
“기술은 아무도 훔쳐가지 못합니다.”
모텍스 직원들은 현재 개발이 거의 끝난 스마트라벨기계를 보여 주며 말했다.
10억 원이 넘는 고가(高價) 장비다. 장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은 워낙 공들여 만들었기 때문에 아무도 따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스마트라벨기계는 전자태그(RFID) 칩을 종이에 넣어 찍어내는 기계로 이를 상품에 붙이고 계산대를 지나가기만 하면 가격 계산이 끝난다.
지금은 RFID 칩의 가격이 비싸서 활용이 늦어지고 있지만 조만간 대형매장에서 상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의화 개발부장은 “스마트라벨기계로 찍어낸 RFID 라벨은 대형마트에서 가격표시기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며 “슈퍼마켓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텍스 가격표시기의 업그레이드 형태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이 기계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앞주머니에 RFID 칩이 들어간 스마트카드 회로도를 품고 다닐 정도로 요즘엔 항상 이 기계 생각만 한다고 했다.
모텍스가 이 기계의 개발을 시작한 것은 2003년경 모텍스로 배달된 소포 때문이었다.
해외 바이어들이 중국산 ‘짝퉁’ 가격표시기를 보내온 것이다.
모텍스 초기 제품의 설계를 그대로 베꼈다. 회사 표시 라벨마저 비슷했다. 품질은 썩 좋지 못했지만 모텍스 제품의 3분의 1 값에 팔리고 있다는 바이어들의 얘기에 임직원은 충격을 받았다.
중국의 짝퉁 등장과 원화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으로 모텍스 매출은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판매 대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가격표시기는 여전히 잘 팔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산 가격이 워낙 싸다 보니 우리도 가격을 조금 낮출 수밖에 없었지요.”
모텍스는 RFID로 업그레이드된 가격표시 시스템을 통해 짝퉁 상품으로 모텍스를 추격하고 있는 중국 업체들을 따돌릴 계획이다.
부천=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