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이 어른거리는 향로봉 정상에서 북녘 하늘을 한참 바라본다. 남북이 하나 되는 그날이 오면, 우리는 이 순간 잇지 못했던 나머지 반쪽을 호랑이처럼 단숨에 달려 기어이 백두산에 도달하고야 말 것이다. 그리하여 그 천지의 맑은 물로 목젖을 적시고 마음껏 포효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나는 백두대간을 다 밟아 보지 못했다. 백두대간이란 백두산에서 두류산(지리산의 옛 이름)에 이르는 장장 1625km의 큰 산줄기를 뜻한다.
이 큰 산줄기에서 북한 땅에 속한 구간이 985km, 남한 땅에 속한 구간이 640km이다. 북녘의 백두대간을 밟아 보지 못한 것이야 내 탓이 아니다. 하지만 남녘에 살면서, 게다가 명색이 ‘산에 다니는 놈’이,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의 남한 땅 백두대간도 다 밟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커다란 부끄러움이다. 흔히들 남한 땅 백두대간을 24구간으로 나누는데, 내가 밟아 본 구간이라야 절반을 겨우 넘긴 정도이다. 그것마저 워낙 두서없이 이 구간 저 구간을 들쑤시며 돌아다녔던지라 이 위대한 ‘민족의 등뼈’를 올곧게 이해하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할 따름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핑곗거리야 부지기수다. 하지만 백두대간의 곳곳과 거기 서려 있는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 이 책을 뒤적이다 보니 이 모든 핑계들이 더할 나위 없이 초라해 보일 뿐이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나마 내가 이미 밟아 보았다는 그 열 두어 구간마저도 과연 제대로 알고나 지나친 것인지 심히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만약 그 길에 얽힌 역사나 문화를 알지 못한다면 길은 다만 길일 뿐이요, 걸음은 다만 걸음일 뿐이다.
백두대간이라는 용어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신라 말인 10세기 초에 쓰인 도선대사의 ‘옥룡기’다. 이 개념을 근간으로 삼아 우리의 국토를 면밀히 규정한 신경준의 ‘산경표’가 집필된 것은 1769년이다. 일제강점기에 처참히 그리고 의도적으로 묵살된 이 개념을 되살린 것은 1980년대 초 고지도 연구가 이우형 선생이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백두대간은 한국산악계가 끌어안은 가장 커다란 화두가 되었다.
그 덕분에 백두대간을 소재 혹은 주제로 삼아 쓰인 책만 해도 대형 서점의 한쪽 서가를 빼곡히 채우고 남는다. 하지만 산길은 다만 산길일 뿐인가. 백두대간을 종주한다는 것은 헬스클럽의 러닝머신 위를 달린다거나 마라톤코스를 완주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깨달음과 의미를 갖추고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백두대간 가는 길’은 이 근원적인 질문에 성실하게 답한다. 이 책은 그저 종주를 위한 가이드가 아니다. 백두대간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이야기로 백두대간이 단지 물줄기가 넘나들지 못하는 큰 산줄기를 뜻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길과 그 아래 펼쳐진 산자락, 물자락에는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서려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백두대간 자체가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들이 덧쌓여 생성된 거대한 문화의 성채가 아닌가 싶은 느낌마저 든다. 책을 읽으며 나는 부끄러웠고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제야말로 백두대간을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이다. 나는 저자의 이 사려 깊고 튼실한 걸음걸이가 38선을 넘어 백두산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심산 시나리오 작가·심산스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