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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네가 기적이다…한양대 구리병원 미숙아 졸업생 모임

입력 | 2007-05-04 03:01:00

모처럼 함께 모인 신생아 중환자실 졸업생들. 세상에 나오자마자 인공호흡기 신세를 진 미숙아였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은 열정만큼은 어른들에게 뒤지지 않는 ‘위대한 어린이들’이다. 사진 제공 한양대 구리병원


민수(가명)는 태어날 때 750g이었다. 1998년 4월 엄마 배 속에서 25주 만에 나와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쉬었다. 바깥세상이 외환위기로 휘청거리고 있을 때였다. 전셋집을 전전하던 부모는 호흡기를 떼어 달라고 했다. 하루 6만 원씩 병원비가 눈 덩이처럼 쌓여 가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아이가 장애아로 자랄까봐 싫었다. 하지만 의료진이 아이를 위해 기도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돌렸다.

중환자실에서 5개월을 보내고 퇴원한 민수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다. 자라면서 탈도 많았다. 또래보다 2년가량 발달이 늦은 것은 물론이고 때때로 크고 작은 수술을 받았다. 한약을 입에 달고 산다. 밥은 여전히 어른 숟가락으로 두 숟가락 정도만 먹어 속을 태우지만 엄마는 고맙기만 하다.

“이렇게 잘 자라 줬는데 그때 포기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아이들은 생명 그 자체만으로도 부모에게 선물이니까. 미숙아를 둔 부모들도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2일 오후 경기 구리시 한양대병원 강당에서 어린이날을 맞아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이 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을 거쳐 간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 올해로 일곱 번째 열리는 행사다.

중환자실 ‘졸업생 모임’에 참가한 아이들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저마다 ‘위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품고 있다.

올해 장애아 특수학교에 입학한 승우(8) 군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나올 때 800g이었다. 뇌출혈 때문에 ‘평생 누워 지낼 것’이란 선고를 받았다. 승우는 이제 주변 물건을 잡고 일어서거나 앉는 것은 물론 스스로 자리를 옮겨 다니기도 한다.

엄마 김경숙(43) 씨는 “승우가 학교에서 ‘리틀 배용준’으로 불린다”며 “의사 표현을 잘하진 못하지만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천재 뺨치게’ 잘 안다”고 말했다. 장애아와 그 부모로 사는 일이 한국 사회에선 엄청난 스트레스지만 미숙아로 태어났다고, 장애가 있다고 아이의 삶이 가치가 없는 건 아니라는 게 김 씨의 신념이다.

9개월짜리 민서도 승우와 ‘동문’이다. 민서는 850g으로 태어났지만 이후 놀랄 만한 속도로 자라 정상아와 비슷해졌다. 의료진은 한쪽 눈과 귀가 약해 우려했지만 민서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깜짝 놀랐다. 엄마 김은하(36) 씨는 “늘 사랑한다고, 예쁘다고 말해 주고 안아 줘서 성장이 빠른 것 같다”고 말했다.

‘졸업생 모임’ 회원 200여 명 가운데 30여 명이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이들에게 어린이날은 삶을 포기하지 않아 받을 수 있는 축복이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